딸의 투병에서 시작된 '은비사랑'의 헌신
한국모야가족회의 조상제 대표는 '은비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딸을 고생시키지 않으려 가족 상담을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닉네임이지만, 이제는 환우와 그 가족들을 돕는 조언자로서의 정체성이 되었다. 양쪽 뇌혈관 내벽이 두꺼워져 혈관이 막히는 특수한 질환인 모야모야병은 환자 개인을 넘어 가족 전체의 삶을 뒤흔든다. 조 대표는 딸의 회복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뇌과학적 접근을 통한 지속적인 재활이 이루어진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뇌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 대표의 딸 은비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직후인 1998년, 평화롭던 일상은 담임 교사의 연락으로 깨졌다. 교실에서 울며 대답조차 하지 못하던 딸의 모습은 모야모야병으로 인한 뇌혈류량 저하와 그로 인한 언어장애, 마비 증상의 전조였다. 당시에는 원인을 알 수 없어 여러 병원을 전전했으나, 의료진으로부터 꾀병이나 성장통이라는 잘못된 진단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 오른쪽 신체 마비가 이틀간 지속되자 대학병원에서 뒤늦게 모야모야병 확진을 받았다. 은비는 두 차례의 뇌수술을 견뎌야 했으며, 두 번째 수술 과정에서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뇌 가소성을 통한 재활과 가족회 설립의 계기
수술 이후 조 대표는 뇌 가소성 원리를 다룬 논문을 접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손상된 뇌 조직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어도, 지속적인 자극을 통해 주변 신경망을 회복시켜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는 뇌과학적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는 최신 연구를 공부하며 수술 이후에도 환자 맞춤형 일상 관리와 가정 간호가 필수적임을 인지했다. 조 대표는 질환의 징후를 놓쳤던 자신과 정보가 부족했던 의료진에 대한 아쉬움을 바탕으로, 더 이상 다른 가족이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모야가족회를 창립했다.
그가 '환우회'가 아닌 '가족회'라는 명칭을 선택한 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모야모야병은 환자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하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2002년 설립 이후 25년 동안, 가족회는 단순한 의료적 궁금증 해소를 넘어 투병 중인 가족들의 현실적인 고충을 나누는 창구가 되었다. 환자마다 증상과 예후가 극명하게 다른 특성 때문에, 조 대표는 2012년 퇴직 후 한 가정을 8시간 이상 상담할 정도로 개별적인 밀착 지원에 힘써왔다.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인 희귀질환자 지원
발병 후 14년이 흐른 현재, 은비는 국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어른으로 성장했다.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매일 감사하며 살아가는 은비는 지속적인 재활 덕분에 일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평생을 뇌병변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은비처럼 고차뇌기능장애를 겪는 희귀질환자를 위한 국내 지원 제도는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일본이 올해 4월부터 관련 지원법을 시행한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은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현재 국내 희귀질환 가족의 규모는 약 200만 명에 달하며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희귀질환자를 위한 별도의 복지 체계를 구축하고, 이들이 겪는 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인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