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수감 생활 속에서 피어난 생명에 대한 통찰

과거 한 시국 사건에 휘말려 13년 2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억울하게 수감 생활을 견뎌야 했던 황대권 선생은, 감옥이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작은 생명체들을 기르고 관찰하며 그 기록을 편지에 담아 외부로 전달했다. 이후 이 기록들을 엮어 2002년 도솔 출판사를 통해 발간된 '야생초 편지'는 단순한 자연 관찰 기록을 넘어 생명과 자유,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며 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의 '위대한 청개구리'라는 대목에는 저자가 직접 경험한 일화가 등장한다. 황 선생은 청개구리와 교감하기 위해 코카콜라 병 속에 청개구리를 넣어 키우려 시도했다. 하지만 청개구리는 사람이 먹는 밥알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먹이로 추정되는 파리들을 병 속에 넣어주었으나 청개구리는 반응이 없었다. 그러던 중 파리 한 마리가 날아오르자 청개구리는 번개 같은 속도로 혀를 내뻗어 이를 낚아챘다. 이 순간을 목격한 저자는 생명이 단순히 먹거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찰나에 비로소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는 생명의 위대함을 깨달았다고 기술했다.

개구리의 눈과 과학자들이 마주한 '생명의 코끼리'

황 선생의 깨달음은 숭고하지만, 그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생물학적 사실이 하나 있다. 개구리의 시각 체계는 움직이는 물체에는 민감하지만 정지한 대상은 잘 식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생존을 위해 진화 과정에서 정지한 것을 보는 기능은 퇴화하거나 낙후된 것이다. 예를 들어 개구리의 눈에 나무는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움직임으로만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이를 보고 웃을 수도 있겠으나, 이는 개구리의 생물학적 한계일 뿐이다. 다만 인간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 존재하므로, 인간의 시각이 무조건 우월하다고 자만할 수는 없다.

이러한 시각의 한계는 불교 경전 '열반경'에 등장하는 코끼리와 시각 장애인 우화로 설명될 수 있다. 여섯 명의 시각 장애인이 코끼리의 각 부위를 만지며 상아는 무 같고, 귀는 곡식 까부는 키 같으며, 다리는 절굿공이 같다고 주장하며 서로 다투는 이야기는 우리가 진리의 일부분만을 보고 전체를 오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놀랍게도 과학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생명' 항목을 보면 대사적, 생리적, 생화학적, 유전적, 열역학적, 자체생성적 정의 등 여섯 가지 정의가 나열된다. 과학자들은 이 중 일부를 사용하면서도 생명에 대한 포괄적이고 명쾌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코끼리의 일부만 만지는 시각 장애인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온생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

개구리가 나뭇잎만 보고 나무 전체를 보지 못하듯, 과학자들은 개별 생명체에 매달린 현상만을 관찰할 뿐 생명 그 자체를 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우주인과 같은 고등 문명을 만나지 않는 한, 우리는 추상적인 사고를 통해 이 '코끼리'와 같은 생명의 실체를 그려내야 한다. 흔히 우리는 다람쥐나 소나무처럼 움직이는 존재를 생명으로, 바위나 시냇물을 무생물로 구분한다. 그러나 고립된 다람쥐나 소나무가 홀로 생존할 수 있는가? 생명은 개별 존재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탱하는 공기, 물, 햇빛과 같은 전체적인 연결망 속에 존재한다.

인과의 실타래로 엮인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

생명은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들을 살아있게 만드는 모든 인과관계의 그물 속에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생명을 규명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과의 실타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지구의 생명을 기준으로 본다면 태양과 지구, 그리고 그 사이의 복잡한 요소들이 완결된 인과의 고리를 형성할 때 비로소 생명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눈에는 인과의 실타래에 매달려 생존하는 낱낱의 생명체만 보일 뿐이지만, 만약 우리가 이 전체적인 연결 구조를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다면 새로운 명칭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를 '온생명(global life)'이라 명명했다. 개별적인 생명체는 '낱생명'이라 부르며, 이들은 '온생명'의 나머지 부분인 '보생명'과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생명으로서의 자격을 갖춘다. 생명 현상이 자족적으로 유지되려면 우주적 차원의 '인과의 그물'이 필요하며, 이를 담아내는 물리적 체계가 바로 온생명이다. 태양과 같은 항성과 지구라는 행성이 적절한 틀을 이루고, 그 안에서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형성되어 진화가 일어날 때 온생명은 유지된다. 약 40억 년의 세월을 거쳐 형성된 이 온생명 안에는 다양한 낱생명들과 이를 탐구하는 인간의 지성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 소개

장회익 교수는 1938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30년 넘게 교수로 재직하다 퇴임한 후, 현재는 충남 아산에서 거주하며 '소요거사'로서 통합적 학문을 탐구하고 있다. 물리학을 비롯해 과학이론, 생명의 이해, 동서 학문 비교 등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삶과 온생명', '과학과 메타과학'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