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직접 요청 요구에 재판 지연 가속화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최근 형사 재판을 지휘하는 과정에서 검찰 측에 공소장 변경과 더불어 쟁점 관련 판례 제출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자료 제출 시 증거능력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재판부가 직접 해당 기관에 사실조회를 신청해달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처럼 불필요한 절차가 추가되면서 재판 진행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 해당 판사의 설명이다.
지난달 2일 개정 형사소송법이 적용된 지 한 달이 지났으나,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는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검찰은 증거를 확보하는 데 제약을 받고 있으며, 법원은 검사의 역할을 대신해 추가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변호인들 또한 수사 단계별로 증거를 제출하거나 기록을 열람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사건 처리가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개정 형소법이 불러온 증거 확보의 한계
1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개정 형사소송법상 검사의 증거 확보를 제한하는 규정이 실무 현장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형사소송법 제245조의13 제3항에 따르면 검사가 고소인 면담이나 사실관계 확인을 통해 얻은 자료는 재판에서 증거로 쓰일 수 없다. 또한 같은 조 제4항은 공무소 등에서 자료를 받아 기록에 첨부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공소 유지를 위한 별도의 증거 확보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검사들이 재판에 필요한 증거를 직접 수집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검사의 수사권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실관계 확인 절차 역시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를 담당하는 한 검사는 사건 특성상 피해자의 비언어적 표현이나 진술이 매우 중요해 면담이 필수적이지만, 당사자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구속 사건에서 포렌식 작업까지 병행해야 할 경우, 정해진 기한 내에 사건을 처리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우려했다.
피해자에게 전가되는 부담과 법조계 지적
이러한 제도적 공백의 피해는 결국 범죄 피해자와 고소·고발인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국선변호사 A씨는 최근 성범죄 사건이 공소청으로 송치된 이후 새롭게 확보한 대화 녹취록을 제출하려 했으나, 경찰에 먼저 제출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A씨는 피해자 국선변호인이 사건 송치 이후에 선임되는 경우가 많아 뒤늦게 증거를 확보하는 일이 잦은데, 매번 경찰을 거쳐야 하니 사건 처리가 불필요하게 지연된다고 설명했다.
도주호 법무법인 LX 변호사는 서울 강남경찰서에 불송치 결정 사건의 이의신청을 위한 기록 열람을 신청했으나, 피고소인의 진술조서 같은 핵심 자료는 제외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이의신청에 필요한 수사기록의 일부나 전부를 열람·등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공개 기준이 없고 방대한 기록을 처리할 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기소 및 공소유지 단계에서 검사의 권한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사를 수사 기관으로 간주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증거 능력을 제한하는 규정을 넣은 것이라며, 공판 단계에서 증거 수집을 허용하는 등 입법을 통해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의 혼선과 제도적 과제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 이후 검사와 변호인의 증거 수집 및 기록 열람이 제약되면서 수사와 재판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법원은 사실조회 업무의 부담을 떠안게 되었고, 피해자와 고소인들은 증거 제출의 어려움과 기록 제한으로 인해 사건 처리가 늦어지는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