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금융권 넘어 일상까지 번진 사이버 위협
최근 금융업계와 산업 현장은 물론 대학과 종교 시설,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는 사이버 침해 사고가 잇따르며 국내 보안 체계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기존의 보안 위협에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한 고도의 공격 방식이 등장함에 따라 피해의 규모와 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안의 사각지대를 면밀히 점검하고 방어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등 선제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0월 한 달간 발생한 사고들을 살펴보면 금융권과 산업계를 포함한 동시다발적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두드러졌다. 금융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10월 14일 기준, 은행과 저축은행을 포함한 16개 금융기관에서 약 10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보안 위협은 금융권에만 국한되지 않고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연세대학교, 여의도순복음교회, 한국전력 등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할리스와 같은 커피 프랜차이즈 및 GS건설의 자이 아파트 커뮤니티 예약 시스템까지 침해를 당하며 사이버 공격이 시민들의 일상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했음이 드러났다.
AI 에이전트가 이끄는 ‘해킹의 대중화’
이번 연쇄 침해 사고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공격이 현실의 위협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금융권 연쇄 공격 과정에서 포착된 ‘아텍스(ARTEX)’는 인공지능 기반의 자율 침투시험 도구로,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취약점을 찾고 공격 경로를 설계하여 실행하는 전 과정을 자동화한다. 이러한 기술은 공격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뿐 아니라 기술적 진입 장벽까지 낮추고 있다. 실제로 최근 검거된 국내 해킹 조직은 13개월 동안 90여 곳의 기업과 기관에서 정보를 탈취했는데, 이 중 60곳은 인공지능을 도입한 지 불과 40여 일 만에 뚫린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해당 범행을 주도한 인물은 IT 비전공자로 밝혀졌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인간을 대신해 취약점 분석부터 공격까지 수행하면서 비전문가도 전방위적 해킹이 가능한 ‘해킹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고 진단했다.
핵심망 대신 노리는 ‘외곽의 약한 고리’
최근 해킹의 또 다른 특징은 공격자들이 기업의 핵심 시스템을 정면으로 겨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안랩 시큐리티 인텔리전스센터(ASEC)의 지난 29일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사고들은 외부 백업 솔루션이나 클라우드 상의 임시 파일 등 핵심 업무 시스템과 연결된 외곽 접점을 통로로 삼았다. 안랩은 자율형 공격 에이전트가 요새화된 핵심 시스템을 직접 공격하기보다, 보안 통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외부 공격 표면을 광범위하게 자동 스캔하여 취약한 지점을 집요하게 공략한다고 경고했다. 즉, 외곽 접점이 작아 보이더라도 핵심 데이터로 향하는 통로가 될 수 있으므로, 핵심 전산망 보안에만 집중하다가는 인공지능 공격에 취약한 ‘쪽문’을 열어줄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현상이 오로지 AI 공격의 확산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실시한 긴급 점검 결과, 조사 대상인 555개 금융회사 중 130곳에서 보안상 미흡한 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다중 인증과 접근 권한 통제, 이상 행위 탐지 같은 기본적인 보안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동시에, 모든 산업 분야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방어 역량을 확보하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