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물질 인생이 담긴 정갈한 제주식 아침상
제주올레 20코스가 지나는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바닷가 근처, '순자할망민박'의 아침은 따뜻한 쌀뜨물 차로 시작된다. 지난 22일, 이곳을 찾은 세 명의 여행객은 김순자(73) 할망이 정성껏 차려낸 제주식 아침 식사를 마주했다. 4인용 식탁 위에는 제주산 보리쌀과 좁쌀로 지은 밥을 중심으로 늙은호박된장국, 톳볶음, 날미역무침, 소라볶음, 오징어볶음, 파김치 등이 정갈하게 놓였다. 직접 채취한 해산물을 내놓으며 내일은 전복죽을 준비하겠다고 말하는 김 할망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40년간 육지와 일본을 오가며 물질을 이어온 그는 손님들을 위해 육지 말투를 섞어 대화하기도 한다.
이곳은 13살 무렵부터 어머니와 언니들을 따라 물질을 시작한 해녀 김순자 할망의 세월이 녹아있는 공간이다. 1987년, 30대 시절에 물질로 모은 자금으로 친정집을 다시 샀던 기억은 그의 삶을 지탱한 원동력이었다. 70세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누비며 물질을 해온 그에게 고향 집은 늘 돌아가고 싶은 안식처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노후에는 자신의 집에서 민박을 운영하겠다는 꿈을 꾸어온 김 할망에게 지난 6월,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에어비앤비와 제주올레의 협업, '할망숙소'의 탄생
김 할망의 꿈은 제주올레와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의 협업을 통해 현실이 되었다. 에어비앤비는 여행자가 지역 문화를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는 '로컬 체험형 숙소'를 제안했고, 제주올레는 이에 응해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며 '할망숙소'를 만들어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제주해녀 문화를 테마로 한 '할망숙소 시즌2' 프로젝트는 행원리 이장의 소개로 김순자 할망을 만나며 본격화됐다. 이 프로젝트는 에어비앤비 커뮤니티 펀드의 지원을 받아 한림읍 귀덕리의 이성매 할망(귀덕온담), 애월읍 구엄리의 최순덕 할망(애월당귤-불턱올레)의 숙소 개업으로도 이어졌다. 한편, 애월읍 납읍리의 '할망스테이 두모악'을 운영하는 이진옥 할망은 해녀는 아니지만 제주올레 안내사로서 활동 중이다.
국적 불문하고 이어지는 여행객들의 발길
개업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할망스테이를 찾는 여행객들의 열기는 뜨겁다. 김순자 할망의 10월 일정표에는 평일 중 단 이틀을 제외하고는 방문객들의 예약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샌드위치를 처음 맛보게 해준 여성 손님부터, 92세 할머니의 손맛이 그리워 찾아온 남성 손님까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중국, 미국,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과는 번역기를 활용해 소통하며 국경을 넘는 정을 나누고 있다.
물질과 쪽파 농사를 병행하며 여행객을 맞이하는 김 할망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