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넘어선 극한의 기온과 미각의 변화

지난 7월 15일 초복 무렵, 서울 마포구의 한 평양냉면 전문점은 줄을 선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숨쉬기조차 버거웠던 여름의 열기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완강하게 이어졌다. 8월 초에 찾아온 혹서는 동남아시아의 전형적인 무더위를 압도할 만큼 뜨거웠다. 경남의 특정 도시는 기온이 42도를 상회했고, 서울 역시 39도에 육박하는 고온을 기록했다. 이제 '동남아만큼 덥다'는 표현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닌, 방콕이나 자카르타의 기온을 웃도는 엄연한 사실의 기록이 되었다. 이러한 극한의 날씨 속에서 커피 애호가들이 우아하게 핸드드립 커피를 즐기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본인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회상한다. 눈을 뜨면 기계적으로 얼음을 가득 채운 아이스커피를 찾게 되었으며, 외식 메뉴로는 살얼음이 낀 육수의 평양냉면을 본능적으로 선택하곤 했다. 다행히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한가운데에 들어서며, 이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온기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잔치국수나 우동의 식감을 온전한 감사함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계절의 순환은 이처럼 인간의 미각과 식습관에 자연스러운 영향을 미친다.

'얼죽아' 현상 뒤에 숨겨진 자기 착취의 시대상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한기가 느껴지는 순간에도 문득 차가운 아이스아메리카노나 슴슴한 평양냉면의 육수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이를 단순한 변덕으로 치부한다면, 개인의 취향과 일상적 감각이 사회적 조건과 맺고 있는 밀접한 관계를 간과하게 된다. 해외 언론인 AFP 등이 주목한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라는 용어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현대의 주체들은 외부의 강압이나 빅브라더의 감시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와 권면의 시대정신 아래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착취하는 양상을 보인다. 타자에 의한 억압이 사라진 빈자리를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세우는 자아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목과 가슴을 타고 내려가 폐부 깊숙이 전달되는 차가운 음료는 단순한 기호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삶이라는 치열한 경주에 임하기 위해, 끊임없는 집중과 각성을 유지하려는 일상적 기술이다. 과거 선인들이 억울함과 분노가 속에서 불로 타오르는 상태를 '화병'이라 불렀듯, 오늘날의 고통 역시 복잡한 형태로 축적되고 있다. 치솟는 집값과 높아진 취업 문턱, 끝없는 비교의 굴레는 현대인의 속을 달군다. 이러한 열기는 청년층의 우울과 냉소를 넘어 중장년층의 불안과 무기력으로 전이된다. 내부의 열이 식지 않기에 몸은 습관적으로 찬 것을 찾게 되는 것이다. 자극적인 맛에 지친 감각이 아무것도 더해지지 않은 평양냉면의 무색무취함에서 안식을 찾는 것은 현대성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회복탄력성을 넘어선 구조적 대안의 필요성

문제는 휴식조차 성과와 가시성의 논리에 종속되었다는 점이다. '갓생'은 자기계발의 다른 이름이 되었고, '힐링'은 소비해야 하는 하나의 경험으로 변질되었다. 유명 냉면집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 인증사진을 남기는 행위는 휴식마저 관리하고 증명해야 하는 시대적 정동을 반영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나름의 철학을 담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의 마음 챙김이나 회복탄력성이라는 논리가 구조적 문제의 해법을 대신하며 사회적 상상력을 차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좋은 사회란 개인이 소진된 뒤에 얼마나 잘 회복하는지를 테스트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왜 소진되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고, 쓰러지기 전에 잘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을 상상해야 한다. 평양냉면의 담백함과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청량함은 성과 중심의 일상에서 잠시나마 감각을 정비하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한다. AI의 등장, 불안정한 고용, 주거 절벽, 성과 중심의 평가가 압박하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자기계발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기제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저항하며, 실천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차가운 얼음 없이도 평온한 날이 올 때까지, 서로의 잔이 비어 있지 않은지 살피며 이 시대를 함께 건너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