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자도 뚫지 못한 견고한 고용의 벽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2년 동안 무려 2,300여 곳의 기업에 지원서를 제출했음에도 여전히 무직 상태인 한 구직자의 사례를 조명했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 인물은 제약 분야의 연구직을 목표로 삼았으나 대부분의 지원에서 고배를 마셨다. 눈높이를 대폭 낮추어 크랩 케이크 제조 공장의 조리 직무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돌아온 연락은 없었다.
이러한 사례는 현재 미국의 저채용 및 저해고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4%대 초반의 실업률 지표는 고용 시장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상 해고가 역사적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해당 기자는 많은 이들이 기존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서 새로운 인력이 유입될 기회 자체가 제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는 성장하고 있으나, 정작 새로운 인재들은 성장의 울타리 밖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청년층에 닥친 구조적 취업난의 실체
대한민국의 상황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5세부터 64세까지의 고용률은 70%를 넘어서고 실업률 또한 완전 고용에 근접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15세에서 29세 사이의 청년층 취업자 수는 올해 9월 기준으로 47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청년 고용률 역시 29개월째 하락 중이다. 20대 인구 자체는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쉬었음' 상태인 인구는 과거보다 오히려 늘어난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출액이 9월에 연간 최고치를 경신하고 경제 성장률이 5년 만에 3%대로 회복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양상은 더욱 의아하다. 국세 수입 또한 약 90조 원가량 증가하며 전례 없는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은 이 흐름에서 비켜나 있다. 위기 상황도 아닌데 대졸자들이 이토록 길고 구조적인 취업난을 겪는 것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AI 시대의 변화와 기업 채용 구조의 변질
기업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나 저성장 기조를 이유로 축소했던 고용 규모를 다시 확대하지 않고 있다. 공채 시장은 위축되었고, 기업들은 신입 사원에게도 경력을 요구하는 추세로 변했다. 현재 채용 공고 중 순수하게 신입만을 선발하는 비중은 5% 미만에 불과하다. 경력이 없어서 취업을 못 하는데, 취업을 하려면 경력이 있어야만 하는 모순적인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기술적 변화도 청년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신입 사원의 가치를 잠식하는 동시에, AI에게 정교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4050 세대의 역량을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AI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청년들은 다수의 인턴 경험과 전문가 수준의 AI 활용 능력, 그리고 우수한 인성까지 갖추어야만 겨우 입사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청년들의 고군분투와 사회적 이해의 필요성
오늘도 수많은 취업 준비생들은 수백 대 일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마주하면서도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고, 면접 연락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느끼는 허탈함과 막막함에 대해 기성세대의 깊은 공감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눈높이가 높다거나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식의 비아냥은 지양해야 한다. 적어도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는 40~50대 세대가 과거에 지금의 20대보다 훨씬 수월하게 일자리를 구했다는 사실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