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서 실천으로, 기후위기 대응하는 청년들의 움직임
“입으로만 읽고 마음에 새기지 않으며 몸으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이고 나는 나대로일 뿐이니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율곡 이이가 저술한 ‘격몽요결’ 속 ‘독서장’의 이 문장은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배움의 자세를 일깨운다. 정보와 지혜가 가득한 책을 가까이하면서도 정작 삶의 변화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말은 깊은 울림을 준다. 기후변화청년단체 긱(GEYK)의 기후정의팀은 이러한 관념적 독서를 넘어, 책 속의 메시지를 사회적 실천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부터 탈탄소 에너지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활동해 온 비영리단체 긱은 다양한 전문 팀을 운영 중이다. 그중 기후정의팀은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구조가 더욱 공고해진다는 문제의식 아래 결성되었다. 이들은 그동안 연구보고서 발간과 사진전, 시민 토론회 등 다각적인 방식으로 기후부정의 문제를 공론화해 왔다. 올해 이들의 핵심 프로젝트는 아일랜드의 첫 여성 대통령인 메리 로빈슨이 저술한 ‘기후정의’라는 책 한 권에서 시작되었다.
‘기후정의’ 개념의 구체화와 네 가지 사회적 주제
서은수 활동가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만으로는 대중을 움직이기에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불평등과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삶의 가치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메시지는 추상적인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 2월과 3월 사이, 팀원 6명 중 5명(손유진, 서은수, 오연우, 김민주, 최인정)은 해당 도서를 심층적으로 탐독했다. 이들은 매번 3시간 넘게 이어지는 치열한 토론과 추가 조사를 통해 ‘기후정의’라는 모호한 개념을 구체화하며 시야를 넓혔다.
손유진 활동가는 작년 폭염 프로젝트를 통해 기후정의가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직결됨을 체감했으나, 책을 통해 그 영역이 훨씬 방대함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을 설명할 언어가 없던 여성들이 스스로 경험에 이름을 붙여가는 과정이 팀원들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특히 팀원들은 “조직되지 않은 유일한 집단은 빈곤층뿐이며, 그들에겐 필요한 것이 많음에도 발언권이 없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기후정의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과 관계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러한 통찰은 네 가지 구체적인 소주제로 구체화되었다. 이동장애인의 일상을 다룬 ‘장애’, 폭염 속 주거와 노동을 견디는 ‘청년의 일상’, 지역별 녹지 격차를 살핀 ‘녹지’, 그리고 누구나 차별 없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지를 묻는 ‘공공 공간’이 그것이다. 팀원들은 각 주제를 심층 탐구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며 수집된 이야기들을 ‘앤트레일(Antrail)’이라는 이름의 편지로 엮어냈다. 이는 개미가 페로몬으로 길을 만들듯 시민들과 기후정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시민과 연결되는 웹 아카이브와 사회적 독서의 가치
지난 9월 7일부터 4주간 매주 월요일, 기후정의팀은 사전 신청을 한 시민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했다. 시민들의 답장은 팀원들이 모두 읽고 다음 편지를 작성하는 소중한 재료가 되었다. 이 모든 과정과 주고받은 편지들은 웹 아카이브(antrail.netlify.app)에 기록되어 누구나 그 흐름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되었다. 팀은 올해 연말에 워크숍과 활동 전시를 계획하며 프로젝트를 확장할 예정이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팀원들은 자신의 위치를 재점검하기도 했다. 서은수 활동가는 책 속 주인공이 서명 운동을 통해 실천을 이끌어낸 사례를 언급하며, 사람들이 함께 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한 실천임을 강조했다. 최인정 활동가는 ‘시추에이티드 포지션(situated position)’ 개념을 통해, 경북 산불 현장의 이재민을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했다. 그는 타인의 목소리를 대신 해석하기보다, 개인의 경험이 수면 위로 드러나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민주 활동가는 기후정의팀을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며 ‘복작복작’한 공동체를 꿈꾸는 팀이라 정의했다. 이들에게 책은 단순한 지식의 저장소가 아니라, 시민들을 초대하여 함께 대화하고 실천을 이끌어내는 매개체였다. 한겨레와 재단법인 지관이 공동 기획하는 이 연재는 독서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조명하며, 일상 속에서 사회적 독서가 지닌 효능과 새로운 공동체 문화의 가능성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