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과 꿈을 그리는 표현주의 화법
조미자 작가는 인간의 정서와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의 초기 작업인 ‘고양이에게 말 걸기’(2003)와 ‘기역은 공’(2002)은 한국 창작 그림책 분야에서 표현주의적 기법을 선구적으로 도입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성적 통제를 벗어난 무의식이나 꿈의 영역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된 표현주의는 인간의 불안정한 심리를 묘사하는 핵심 도구가 된다. 특히 사물의 크기나 배치를 상식적인 맥락에서 뒤트는 ‘데페이즈망’ 기법이 이 작품들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빌딩 숲 너머 하늘에 고래가 유영하거나, 담벼락보다 거대한 고양이가 앉아 있는 등의 장면은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를 떠올리게 하며 독자에게 낯선 시각적 경험과 고정관념의 탈피를 선사한다.
불안을 직면하고 치유하는 용기
작가의 내면 탐구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 ‘핑거’를 통해 ‘가끔씩 나는’(2020), ‘불안’(2019), ‘슬픔에 빠진 나를 위해 똑! 똑! 똑!’(2023) 등의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가끔씩 나는’이 자아에 대한 독백에 가깝다면, ‘불안’은 요동치는 마음을 달래는 치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가 출판사를 설립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이 책에서 불안은 화자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공포에 빠뜨리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작가는 바닥에 가라앉은 불안을 억지로 외면하지 않고, 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 있는 태도를 보여준다.
오리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감정의 흐름
그림책 ‘불안’은 불안이라는 감정을 오리의 모습으로 시각화했다. 오리의 외형은 화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하는데, 처음에는 압도적으로 크고 강한 모습이었다가 점차 작고 연약한 존재로 묘사된다. 작가는 논리적 설명보다 감정의 흐름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으며, 그 과정에서 불안과 화자의 관계가 변화하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다. 온갖 경험을 함께한 불안이 어느 날 소파에 나란히 기대어 잠드는 장면이나, 두려움 속에서도 대화가 가능해졌음을 알리는 문장, 그리고 평온하게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 등이 그 예시다.
선의 온도로 구현한 감정의 연출
작가는 무거운 감정을 다루면서도 채도가 높은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어둡기만 한 분위기를 경계했다. 100% 디지털 방식으로 작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드로잉에 수정을 최소화하여 수작업 특유의 거칠고 생생한 질감을 살려냈다. 특히 외곽을 간결한 펜선으로 정리한 방식은 영국 일러스트레이터 장자크 상페의 화풍을 연상시킨다. 조미자의 작품들은 겉보기에 힘을 빼고 그린 듯 보이지만, 각 감정에 최적화된 ‘선의 온도 차’를 정교하게 설계했다. ‘슬픔에 빠진 나를 위해 똑! 똑! 똑!’은 묵직하고 느리게, ‘가끔씩 나는’은 리드미컬하게, ‘불안’은 가볍고 역동적인 선을 사용하여 감정을 구현한다. 이러한 화법은 결국 감정을 내면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공존하며 함께 나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