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고속열차와 기관사들의 파업 선언

스페인 고속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한 이후, 철도 안전 체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기관사들의 파업이 시작됐다. 29일(현지시간) 독일 dpa통신과 현지 매체 엘파이스의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 기관사·철도보조원노조(SEMAF)는 국영 철도 기업인 렌페 그룹의 모든 계열사를 대상으로 하루 동안 파업을 단행했다. 이번 파업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 16일에 이미 예고된 바 있으며, 전 노선의 기관사들이 모두 참여했다. 노조 측은 이번 행동이 철도 안전과 직결된 요구사항을 관철하고, 과거 유사한 사고 이후 정부와 기업이 약속했던 이행 사항들을 다시 한번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스템 결함 지적과 책임 전가에 대한 경고

SEMAF의 디에고 마르틴 사무총장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책임자를 찾는 데만 급급한 현재의 태도를 비판하며,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환경에서도 기관사들이 열차 운행을 강요받는 상황이 빈번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고 당시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진 독일산 자동 열차 보호 시스템(LZB)에 대해, 이미 반복적인 결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기에 교체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와 유사한 목소리는 다른 노조에서도 나왔다. 노동자총연맹(UGT)의 철도 부문 전국 운영 책임자인 비센테 알메나르 기관사는 적절한 장비의 부재가 인적 오류를 유발한다고 언급하며, 장비가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최소한의 방어선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또한 스페인 노동총연맹(CGT) 산하 아디프(ADIF)의 디에고 로드리게스 지부 책임자는 현재의 철도 시스템이 전면 개편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철도교통노조(SCF) 관계자 역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세부 사항이 많은 상황에서 노동자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행태를 경계했다.

우르다 충돌 사고의 참혹한 현장과 정부의 대응

지난 28일 스페인 남부 우르다 인근에서는 렌페 소속 열차가 이리오(Irio) 운영사의 정차 중인 열차 후미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69명에 달하며, 사고 현장에는 소방관과 군 긴급구조대(UME), 의료진 및 경찰 등 약 800명의 인력이 투입되어 구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실종자 중에는 렌페 소속의 기관사와 수습 기관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당국은 LZB 시스템의 고장 이후 렌페 측이 정상 운행을 지시한 경위와 안전 절차 준수 여부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으며, 지난 7월 출범한 사고기술조사 독립행정청(AITAT)도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섰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사고 현장을 방문해 희생자 가족들을 지원하고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여 재발을 막기 위해 모든 국가 기관이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SEMAF는 이번 파업에 이어 다음 달 10일에는 전면 파업을, 12일에는 부분 파업을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