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생존, 시대의 금기를 넘나드는 문학의 기록
2024년 문단에 이름을 올린 권희진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 출간된다. 작품 속에서 “지나간 이를 회상하고 추억하는 행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라고 언급된 문장은, 오히려 기억이 곧 삶의 본질이며 과거를 되짚는 과정이 내일을 만든다는 역설적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특히 표제작인 ‘남자를 사랑한 남자가 사랑한 남자를 잃고 난 후’는 과거이자 미래인 모호한 경계 속에서 상실의 아픔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2007년 등단한 황시운 작가는 이번에 세 번째 소설집을 선보인다. 지난 2011년 첫 장편 ‘컴백홈’으로 창비장편소설상을 거머쥐었으나, 이후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뒤에도 멈추지 않은 창작의 결실이다. 장애인 의무 고용제도 아래 재택근무를 하며 살아가는 인물 세진의 처절한 생존 투쟁과 그보다 더 치열한 희망의 과정을 담은 표제작을 포함해 총 7편의 작품이 독보적인 장애 서사를 구축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고전과 예술적 변주
1960년대와 70년대를 관통하며 사회적 통념과 금기에 저항했던 소설가 전병순(1929~2005)의 데뷔작(1963)이 다시 읽힌다. 여순사건을 문학적으로 다룬 최초의 소설로도 알려진 그의 작품 세계는, 가부장적 질서 속 여성의 사랑과 가족사를 심도 있게 파헤친 ‘현부인’과 ‘독신녀’ 등을 포함한다. 이번 선집(전 7권)은 그의 딸인 강영주 상명대 명예교수가 직접 엮었으며, 상세한 해설을 곁들여 재출간되었다.
2018년 등단한 서이제 작가의 짧은 소설집도 눈길을 끈다. 슬럼프를 오히려 새로운 돌파구로 삼아 나아간 작가의 분투와 그 여정이 파릇하게 피어난 14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타 장르 예술가들과의 교감에서 탄생한 소설부터, 잭 런던의 문학적 성취와 창작론을 고찰한 리뷰에서 확장된 서사, 그리고 작가 본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첫 문장을 쓰다’까지 다채로운 구성을 보여준다.
일본의 미시마 유키오(1925~1970)가 파멸적 미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금각사’(1956년 연재)를 내놓기 직전 발표한 1954년작 소설도 소개된다. ‘금각사’의 분위기와는 확연히 대조를 이루는 이 작품은, 가상의 섬마을을 배경으로 시련을 극복하며 피어나는 10대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그려냈다. 유키오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해당 도서는 이진명 번역, 교양인 출판사에서 1만 6800원에 판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