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과 다른 원리, 세포 분열의 물리적 방해
전기장을 활용한 치료법은 기존 항암제와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으로 암세포를 공격한다. 종양치료전기장(TTFields)은 낮은 강도의 교류 전기장을 이용해 암세포가 분열하는 과정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이는 마치 정교한 설계에 따라 진행되는 공사 현장에서 작업의 방향성을 교란하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과거에는 전기로 암을 치료한다는 개념이 생소하게 느껴졌으나, 202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국소진행성 췌장암 치료를 위한 의료기기 '옵튠 팍스(Optune Pax)'를 승인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 기술은 새로운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피부에 전극을 부착해 특정 주파수의 전기장을 암 부위에 직접 전달한다. 기존 항암제와 병행하여 사용되며, 세포가 둘로 나뉘기 위해 염색체를 이동시키고 내부 구조물을 배치하는 물리적 과정을 방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췌장암 생존율 향상과 임상적 한계
이 분야를 선도하는 노보큐어의 기술은 교모세포종을 시작으로 악성 흉막중피종과 폐암을 거쳐 췌장암까지 적용 영역을 확장해 왔다. 571명의 췌장암 환자가 참여한 PANOVA-3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기존 항암치료만 시행했을 때의 중앙 생존기간은 14.2개월이었으나 전기장 치료를 병행한 그룹은 16.2개월을 기록했다. 또한 1년 생존율 역시 기존 60.2%에서 68.1%로 상승하는 수치를 보였다.
물론 2개월이라는 생존기간 연장이 환자 개개인에게 갖는 의미는 다를 수 있다. 통계적으로 종양 반응률이나 암이 진행되지 않는 기간에서 뚜렷한 개선이 관찰되지 않았으며, 전극을 붙인 피부에 발진이나 염증이 발생하는 부작용도 흔했다. 이러한 점들은 췌장암 치료의 근본적인 난제를 모두 해결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약물치료에 물리적 접근법을 결합함으로써 생존 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확보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정밀한 전기장 전달을 위한 '물리생태의학'
향후 과제는 신체 깊숙한 곳에 위치한 종양까지 전기장을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항암제에 밀리그램(㎎), 방사선에 그레이(㏉)라는 단위가 있듯, 전기장 치료도 종양에 도달한 강도와 분포를 평가할 기준이 필요하다. 인체 조직의 전기적 특성이 다르고 전극 위치에 따라 분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강도를 높이는 것보다 정밀한 계산을 통한 전달 기술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국내 기업 필드큐어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CT나 MRI를 활용해 환자 체내의 전기장 분포를 계산하고, 전극의 배치와 출력을 조절하여 종양에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방사선치료처럼 환자 맞춤형 치료 계획을 수립하려는 시도로, 여러 전극의 출력과 방향을 정밀 제어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다만 이 방식이 기존 대비 실제 치료 성적을 유의미하게 높이는지는 향후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암 연구가 유전자나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약물 개발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암세포가 처한 환경에 주목할 때다. 암세포는 온도, 압력, 산소, 전기적 힘이 작용하는 물리적 환경 속에서 생존하고 분열한다. 생물학이나 화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적 관점을 더해 암을 이해하려는 '물리생태의학'은, 암세포 자체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조건까지 치료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