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경계에서 탄생한 무법의 요새
'구룡성채'라는 명칭으로 더 널리 알려진 구룡채성은 20세기 홍콩의 역사 속에서 어느 국가의 통제도 미치지 못했던 기묘한 공간이었다. 본래 청나라가 영국군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구축했던 해안 요새였던 이곳은, 홍콩이 영국에 할양된 이후에도 행정 관할권이 청나라에 머물러 있었다는 특수성을 지녔다. 이러한 법적 공백은 홍콩의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치외법권 구역을 만들어냈고, 이는 곧 범죄 조직들의 활동 무대가 되는 동시에 경제적·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난민과 빈민들이 모여드는 삶의 터전이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삼합회의 본거지라는 환상과 실제의 삶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교수인 저자 곽한영은 '무법지대'로 낙인찍힌 구룡성채의 이면에 매료되어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관련 문헌과 기사들을 깊이 있게 연구했다. 대중은 홍콩 영화를 통해 구룡성채를 마약과 도박, 매춘이 성행하는 삼합회의 근거지로 기억하지만, 저자는 이를 절반의 진실이라고 지적한다. 서울 잠실 야구장 규모에 달하는 좁은 구역에 밀집된 건물들 사이에는 각종 식품과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부터 무허가 의료 시설, 그리고 저렴한 쪽방촌까지 공존하고 있었다. 저자는 한때 최대 5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거주했던 이 공간의 실질적인 삶을 추적하기 위해, 1993년에서 1994년 사이 철거되어 사라진 구룡성채의 기록물들을 면밀히 조사했다.
밀려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거주지
2019년 홍콩을 직접 찾은 저자의 여정을 따라 구성된 이 책은 구룡성채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홍콩 주민들에게 구룡성채는 외면하고 싶은 흉물스러운 장소였을지 모르나,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에게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 공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국공내전의 종식 이후, 정치적·경제적 격변기에 영국령 홍콩으로 유입된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저자는 당시 홍콩이 직면했던 인구 과밀로 인한 환경 악화와 치안 불안, 부정부패 등의 문제를 구룡성채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응축해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그는 이곳을 단순한 악인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영국과 중국의 대립 사이에서 태동한 생활감 넘치는 '빈 공간'으로 정의한다.
사라진 기록과 남겨진 공원
'아문'과 같은 극소수의 건물을 제외한 구룡성채의 모든 구조물은 철거되었으며, 현재 그 부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저자는 마치 과거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깔끔하게 정돈된 공원을 거닐며, 공식적인 기록에는 남지 못했으나 그곳에서 치열하게 살아갔을 사람들의 생애를 반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