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의 시대, 한국 현대미술을 관통한 권력의 궤적

홍태림이 저술한 ‘검열과 월경의 미술사’(빨간소금, 2만 3000원)는 국가 권력과 자본의 억압에 저항해온 예술가들의 서사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조명한다. ‘국가 검열에 맞선 한국 현대미술의 도전’이라는 부제가 명시하듯, 이 책은 ‘국가 검열’이라는 핵심 키워드로 우리 미술사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196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를 탐구하며, 국가 검열의 주된 논리가 반공주의에서 도덕주의로 점차 변화해 온 과정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입증해 나간다.

억압과 저항을 넘어선 길항의 관계

이 책은 국가의 폭력과 예술가의 응전을 단순히 선악의 구도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저자는 국가의 감시 체제 안에서 예술적 의지를 보존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선택했던 다양한 생존 방식에 주목한다. 때로는 타협을 택하고, 때로는 교묘한 우회로를 찾아냈던 그들의 복합적인 대응 양상을 ‘절충적 자체 검열’과 ‘전술적 자체 검열’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으로 정의했다. 홍태림은 검열과 미술의 관계를 단순한 억압과 저항의 이분법이 아닌,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길항의 관계’로 규정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1980년대 본격화된 ‘민중 미술’의 근간 역시 이전 세대 예술가들이 국가 검열과 맞서며 쌓아온 응전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묻혀버린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뻔한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복원해낸 점도 이 책의 주요한 성과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발생한 국가 폭력을 형상화했다가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로 철거당했던 최민화 작가의 조각 ‘시민-1’에 관한 기록이 대표적이다. 또한 노동 만화인 ‘깡순이’와 ‘사장과 진실’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 법정에 서야 했던 이은홍의 회고 등, 검열의 칼날을 직접 마주했던 이들의 생생한 증언이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