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 결과, 의회 내 과반을 차지한 정파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정국이 극심한 불확실성에 빠졌다. 극우 성향의 여권을 이끄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끌며 재선거를 도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야권인 '변화 진영'이 정권 교체를 위해 아랍계 정당과 연합할 가능성도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네타냐후 총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 정권의 유지를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더해졌다.
29일 현지 시각 기준 이스라엘 중앙선거위원회가 공개한 개표 현황(개표율 93.8%)에 따르면, 지난 27일 실시된 총선에서 여권은 120석의 크네세트 중 53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아이젠코트 전 총장이 이끄는 변화 진영은 48석을, 아랍계 정당들은 19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어 어느 쪽도 독자적인 과반 달성에는 실패한 모양새다.
정부 구성의 향방과 네타냐후의 전략
이처럼 과반 정파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이 '정부기본법'에 근거하여 새로운 정부 구성을 주도할 총리 후보를 지명해야 한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의 보도에 따르면 과거 대통령들은 대개 제1당 대표에게 정부 구성권을 부여해 왔으나, 2009년 시몬 페레스 전 대통령이 2위였던 네타냐후의 리쿠드당에 우선권을 주었던 사례처럼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네타냐후 총리가 협상 주도권을 갖게 된다면, 그는 변화 진영 내 우파 정당들을 대상으로 연정 참여를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28일 연설을 통해 이란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우파 국민정부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변화 진영 소속 정당 중 '비야하드'와 '베이테누'는 이란 및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 강경한 민족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데, 이들 중 8석 이상의 의석이 여권으로 이동할 경우 네타냐후는 과반 의석을 확보하게 된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는 야권 내 일부 우파 인사들이 네타타후 진영으로 이탈하여 그의 과반 확보를 도울 수 있다는 의구심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압박과 야권의 딜레마
또 다른 시나리오는 변화 진영에 거국연정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총리직은 유지하되 아이젠코트 등 야권 인사를 주요 장관직에 배치하는 형태다. 이스라엘 정치권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네타냐후 정권의 지속을 원하며 이러한 형태의 내각 구성을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와이넷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정부에 이타마르 벤그비르와 같은 극우 성향의 장관이 포함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보도했다. 즉, 가자 및 서안지구 합병을 주장하며 국제적 마찰을 빚는 극우 인사들을 배제하고 아이젠코트 측과 협력하라는 요구다.
그러나 변화 진영이 네타냐후 총리와 손을 잡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이들은 선거 과정 내내 네타냐후의 장기 집권을 종식하고, 2023년 10월 발생한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을 방어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레츠 일간지는 만약 이들이 약속을 번복한다면 정권 교체의 기회는 물론 지지층의 신뢰까지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랍계 협력 논란과 재선거 가능성
변화 진영의 수장인 가디 아이젠코트가 협상권을 쥐게 될 경우, 아랍계 정당의 협조를 얻어 총리에 오르는 방법이 있다. 이들을 내각에 포함시켜 과반을 만들거나, 직접적인 참여 없이도 아랍계의 소극적 지지를 끌어내어 총리직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아이젠코트 전 총장은 그간 아랍계와의 연정을 선을 그어왔으나, 이들의 지지를 수용할 가능성까지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은 상태다.
하지만 비야하드와 베이테누는 아랍계 정당과의 어떠한 협력도 거부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 또한 아랍계와의 협력을 '유대인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며 선전전을 펼쳐 이를 방해할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측근이 CNN에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유대계와 아랍계의 정치적 공조를 정당성 없는 행위로 몰아세우며 야권 의원들에게도 아랍계와의 협력을 압박할 계획이다.
결국 정파 간의 심각한 이념 차이로 인해 연정 구성이 무산되고 재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 시나리오를 가장 유력하게 보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과도총리 지위를 이용해 이란 공습 등을 재개하며 민족주의 표심을 결집하는 등 '시간 끌기'를 통해 재선거를 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비브 부신스키 전 고문은 다음 선거에서는 표 분산이 적을 것이며 재외 국민들의 투표 참여도 이전 같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요하난 플레스너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 소장 역시 정부 구성이 지연되는 동안 네타냐후가 권력을 유지하며 차기 총선까지 집권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