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를 마친 뒤 신도들과 점심 공양을 나누고 차를 마시던 중, 안색이 어두운 한 젊은 여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걱정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이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절에서는 공양 후 남는 음식이 거의 없지만,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교사들이 음식을 너무 많이 남겨 마음이 무겁다는 토로였다.
이러한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교사들에게 질문하고 관련 자료를 검토한 결과, 학교뿐만 아니라 관공서나 기업 구내식당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음식을 남기는 행위는 단순한 낭비를 넘어 교육적 차원의 문제로 직결된다. 학교는 지식이 삶으로 전이되는 공간이다. 자연의 고마움과 정성을 가르쳐야 할 교사가 정작 본보기로서 음식을 남기는 모습은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교사의 언어보다 행동을 더 오래 기억하기에, 식판을 대하는 정중한 태도 자체가 한 시간의 수업보다 강력한 가르침이 된다.
밥 한 그릇에 담긴 우주의 신비
이현주 목사는 저서 ‘밥에 대하여’를 통해 밥 한 그릇을 먹는 행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를 섭취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흙과 물, 햇빛과 바람, 그리고 농부의 땀방울이 어우러져 몸속으로 들어오는 신비로운 만남이라는 것이다. 밥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긴 시간 함께 빚어낸 생명의 결실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수고를 망각한 채 눈앞의 음식만을 소비하고 있다. 음식을 남기는 것을 개인의 자유로 여기는 잘못된 권리 의식 속에서, 생명의 선물이어야 할 밥은 단순 소비재로 전락하거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가 되어버린다. 가치를 잃어버린 자리에는 감사 대신 무감각함만 남게 된다.
경물(敬物) 정신과 일상의 수행
사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그 가치를 공경하는 태도는 동양철학의 '경물'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퇴계 이황은 평생 삶의 중심에 '경(敬)'을 두고 아주 작은 사물조차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처럼 밥상을 대하는 태도 또한 일상의 수행이다. 자신이 담은 음식을 남김없이 비우는 것은 생명의 가치를 헤아리고, 음식을 기른 자연과 정성을 들인 이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표현이다. 과거 해인사의 지월 노스님은 대중에게 근검절약을 당부하며, 물 한 방울과 나무 한 그루도 아껴 쓰면 자연의 보호를 받는다고 다정하게 일깨웠다. 이는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는 삶의 태도를 강조한 것이다.
교사의 식판이 곧 살아있는 교과서
교육학자 윌리엄 아서 워드는 위대한 교사는 영감을 주는 존재라고 정의했다. 만약 교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혼란을 겪고 교사의 가르침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반면 교사가 필요한 만큼만 담아 남김없이 먹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실천은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다행히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 실천하는 ‘빈 그릇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음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거창한 구호가 아닌 일상의 실천에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실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감사와 절제를 배우는 삶의 교실이다. 교사의 식판은 아이들이 매일 마주하는 살아있는 교과서와 같다. 그 식판 위에 감사와 책임감이 담길 때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생명 존중의 태도가 스며든다. 한 끼 식사를 대하는 태도가 곧 한 사람의 품성을 빚어내며, 그 품성이 아이의 삶을 변화시킨다. 진정한 교육은 칠판 앞이 아니라, 교사가 남김없이 비워낸 식판 위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