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양자 기술의 패러다임 전환

양자컴퓨팅 산업의 중심축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텔이 양자 알고리즘 전문 기업인 클래시크(Classiq)를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양자 기술의 발전 방향이 '물리적 큐비트 확보'라는 하드웨어 중심에서 '실질적 활용'을 위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되는 변곡점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현지시간 지난 26일, 인텔은 클래시크 인수를 위한 최종 계약 체결 소식을 발표했다. 블룸버그의 보도를 인용한 외신에 따르면 이번 거래 규모는 약 23억 달러, 한화로 약 3조 원에 달한다. 이번 인수는 규제 당국의 승인 등 필수적인 행정 절차를 거쳐 2027년 상반기 중에 최종 마무리될 전망이다.

인텔의 전략: 경쟁사 하드웨어까지 아우르는 표준 플랫폼 구축

방승현 한국양자산업협회 부회장(오리엔텀 대표)은 이번 인수가 양자 컴퓨팅 산업의 무게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기존 산업계가 큐비트 수를 늘리는 데만 집중해 왔다면, 향후에는 복잡한 양자 하드웨어를 실제 산업 현장에서 쓸 수 있게 돕는 소프트웨어와 응용 생태계 구축에 주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텔은 2015년부터 양자컴퓨팅 기술을 축적해 왔으며, 실리콘 스핀 큐비트와 반도체 제조 기술, 극저온 제어 전자장치 등을 이미 확보한 상태다. 인텔은 여기에 클래시크의 알고리즘 설계 및 최적화 기술을 결합해, 단순 연구 단계를 넘어 상용화 사업으로 기술력을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인텔이 클래시크의 다중 하드웨어 지원 환경을 보존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는 구글의 초전도체 방식이나 아이온큐·리게티의 이온 트랩, 큐에라의 중성원자 방식 등 경쟁사들의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개발자들조차 인텔의 소프트웨어 플랫폼 위에서 코딩과 설계를 진행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결과적으로 인텔이 양자 산업의 표준 개발 환경과 데이터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클래시크의 기술력과 글로벌 테크 기업의 경쟁 가속화

2020년 이스라엘에서 설립된 클래시크는 양자 회로 설계를 최적화하고 알고리즘을 자동으로 합성하는 독보적인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기존에는 알고리즘을 하드웨어에서 실행 가능한 회로로 변환하는 데 고도의 전문 지식이 요구되었으나, 클래시크는 개발자가 하드웨어 구조를 깊이 알지 못해도 응용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를 두고 양자 컴퓨팅 시장의 '승자 독식' 경쟁이 본격화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로 보고 있다. 그동안 아이온큐나 리게티 컴퓨팅처럼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들은 주로 하드웨어 중심이었으나, 이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유망한 알고리즘, 에러 보정, 미들웨어 기업들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양자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도전과 시장 확대

국내에서도 양자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업들이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오리엔텀, 큐노바, 큐심플러스, 이와이엘 등 6~7개 업체가 시장 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큐노바는 양자 알고리즘 '하이-브이큐이(Hi-VQE)'를 앞세워 신약 및 신소재 개발 등 양자 융합 시장을 공략하며 일본 등 해외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다.

미들웨어 기술을 보유한 아톰-규(Atom-Q)는 초전도부터 광자 방식까지 16가지의 서로 다른 양자컴퓨터를 하나로 연결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큐심플러스는 양자통신 시뮬레이터인 '큐심프로(QSimPro)'와 운용 소프트웨어 등을 통해 설계부터 실제 운용까지 연결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인 이와이엘은 초소형 양자난수생성기(QRNG) 기술을 바탕으로 보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큐심플러스의 노광석 대표는 이번 인수가 하드웨어를 산업적 가치로 전환하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언급하며, 최근 학계에서도 소프트웨어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는 만큼 연구와 산업을 잇는 생태계 확산이 빨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