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충격에서 챗GPT의 폭발적 성장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이 인공지능(AI)을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닌 실존하는 위협이자 기회로 인식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었다. 당시 바둑의 무한한 경우의 수를 정복할 수 없다고 믿었던 인간의 예측과 달리, 기계가 승리를 거두며 AI에 대한 경각심과 자본의 관심이 동시에 폭발했다. 이후 기술의 계보는 변화했다. 2017년 구글이 선보인 트랜스포머 모델은 2022년 말 챗GPT의 등장과 함께 대중화의 정점을 찍었다. 챗GPT는 출시 단 5일 만에 1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인스타그램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두 달 만에 전 세계 이용자 1억 명을 돌파했다. 이러한 성장은 뛰어난 트랜스포머의 연산 능력, 게임 산업이 일궈놓은 GPU 하드웨어의 보급,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축적된 방대한 디지털 데이터라는 세 가지 요소가 맞물린 결과다.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준비되지 않은 사회적 규칙
이제 AI는 개인의 거부권을 넘어선 국가적 전략의 핵심이 되었다. OECD 회원국 중 97%가 국가 차원의 AI 전략을 수립했으며, 한국 정부 역시 2026년 AI 예산을 전년 대비 3배 늘어난 9조 9천억 원으로 편성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편리함을 향한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과거 인터넷 도입기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기술을 거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정교한 규칙을 만드는 일이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2030년까지 전 세계 전력의 3%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진짜 문제는 에너지 총량보다 그 속도와 지역 주민이 짊어지는 사회적 비용, 그리고 자본에 의한 AI 통제와 불평등 문제다.
채용 현장의 그림자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의 판단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정보를 판단하는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중 약 21.7%가 이미 채용에 AI를 도입했으나, 현행법상 지원자에게 AI 사용 여부를 알릴 의무는 없다. 지원자는 자신이 기계에 의해 탈락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아마존이 과거 여성 이력서에 낮은 점수를 부여해 시스템을 폐기한 사례처럼, AI는 학습 데이터에 숨겨진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고 불평등을 고착화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AI 도입 시 기준 설정의 주체, 오류 검증 방식, 그리고 불이익을 받은 자의 이의 제기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산업 진흥에 밀려난 시민의 권리와 안전장치
현재 한국의 AI 정책은 산업 진흥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 2026년 1월 시행된 AI 기본법은 유럽연합(EU)의 AI법과 달리 인권을 침해하는 AI를 금지하는 조항이 미비하며, 고위험 AI에 대한 제재도 실효성이 낮다. 특히 이재명 정부 하에서 통과된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 특별법과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은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가명 처리되지 않은 개인정보의 상시 활용을 허용하는 등 기업에 유리한 특례를 대거 포함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세금으로 산업을 키우면서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관리 책임과 위험은 기업의 자율에 맡기거나 시민의 몫으로 돌리는 구조를 만든다. 시민사회가 공동행동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설계 단계에서의 참여는 여전히 차단되어 있다.
시민이 주도하는 AI 통제권의 확보
글로벌 차원에서는 규칙을 만들기 위한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EU는 AI법을 통해 투명성 의무를 강화하고 있으나 규제 범위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지속되고 있으며, 미국 역시 연방 정부의 완화 기조와 주 정부의 보수적 입법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인다. 반면 한국은 산업 진흥을 위해 전력 계통 영향 평가를 면제하는 등 안전장치를 뒤로 미루고 있다. 2023년 인천 송도에서 채택된 세계녹색당의 AI 결의안은 인간의 통제, 환경 영향 최소화, 노동자 보호 등 명확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처럼 알고리즘을 공개하고 시민의 이의 제기 창구를 만드는 실질적인 모델이 필요하다. AI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시민이 주체가 되어 도입부터 사후 처리까지 전 과정을 감시하고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