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수요와 18.4GW라는 거대한 목표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3대 메가프로젝트'의 핵심 축인 18.4GW 규모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 구축 계획에 대해, 실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IDC는 초고성능 반도체를 활용해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이를 피지컬 AI와 연결해 산업 현장에서 구동하는 '데이터 선순환'의 중추 역할을 맡는다. 정부는 2029년까지 8.4GW를 구축하는 1단계를 거쳐, 2035년까지 10GW를 추가하는 2단계 계획을 세웠다. 1단계에는 네이버, SK, GS가 550조 원을 투입하며, 전체 2단계까지의 총 투자 규모는 1,000조 원을 상회할 전망이다.
하지만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주최한 '3대 메가프로젝트 공개포럼'에서 정병선 서강대 교수는 현재 확정된 AIDC 수요가 전체 계획의 12.5%인 2.5GW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2020년 1월부터 2023년 2월 사이 한국전력에 접수된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 예정 통지 중 67.7%가 실제 고객이 아닌 '허수'였다는 감사 결과도 제시됐다. 정 교수는 원전 13기 분량에 달하는 막대한 전력을 무조건 투입하기보다, 1단계는 확실한 수요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2단계는 장기 계약자(앵커 고객)와 전력망이 확보된 사업부터 단계적으로 승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만약 약속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부지와 전력 배정을 회수하는 엄격한 원칙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사례를 통한 리스크 관리와 수요 창출 전략
미국 텍사스주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빅테크 기업들의 수요로 전력 신청이 10배 급증했으나, 상당수가 고객을 확보하지 못한 '유령 신청'으로 판명되자 텍사스주는 9월부터 신규 허가를 중단하고 규제를 강화했다. 정 교수는 한국 역시 국내 에이전트 및 제조 AI 확산을 앞당기고, 해외 앵커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국내 기업의 AI 활용률(9.2%)과 에이전트 적용률(3.7%)을 주요국 수준인 20~40%로 끌어올리고, 산업단지 내 엣지 데이터센터 보급과 국산 추론 인프라 확대를 통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에 참여한 윤대균 아주대 인공지능연구원장은 18.4GW 목표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점유율 25% 달성을 전제로 설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요를 국가 필수 수요, 산업 AI 전환(AX) 수요, 해외 임대 수요의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지원 방식을 차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원장은 AIDC가 반도체와 피지컬 AI, 그리고 실제 활용 수요가 교차하는 기반인 만큼, 시설 구축 계획에 운영 및 활용 계획이 반드시 결합되어야 국가적 역량으로 치환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패권과 제조업 AI 전환을 위한 제언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개선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준 산업연구원 전략산업연구센터장은 한국이 D램과 HBM 시장에서는 압도적이지만, 전체 시장의 76%를 차지하는 비메모리 분야는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메모리 강점을 시스템 반도체로 연결하기 위해 벨기에의 IMEC과 같은 '한국형 반도체 혁신 허브(K-IMEC&K-Foundry)' 구축을 제안했다. 백서인 한양대 부교수는 이러한 전략이 대만이나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얼마나 현실적인 경쟁력을 갖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조업의 AI 전환을 위해서는 데이터 주권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박민원 국립창원대 총장은 해외 기업들이 제조 노하우를 AI 학습 자산으로 흡수하는 상황을 경계하며, '제조 데이터 활용권' 도입과 숙련공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대 메가프로젝트의 투자 규모가 GDP의 60%에 달하는 압도적 수준임을 강조하며, 인프라와 전력, 인허가 문제를 '속도전'으로 해결해 반도체 팹 가동을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 투자를 넘어 국가 성장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