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시즌이 종료됨에 따라 정치권의 격전지가 입법과 예산 심사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시한인 12월 초를 앞두고 국회의 예산 심사 기능이 본격화된 데다, 입법 전쟁의 양상까지 더해지며 여야의 대립이 최고조에 달하는 모습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면서, 향후 국회 절차를 둘러싼 양당의 강 대 강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821조 규모 슈퍼예산 놓고 '사수'와 '삭감' 맞대결

정부가 제출한 총지출 기준 역대 최대치인 820조 9,000억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두고 여야의 심사 전쟁이 시작됐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지난달 말 진행된 공청회를 기점으로 종합정책질의와 부처별 심사, 예산소위 가동 등 본격적인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경제 성장과 민생 안정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운용을 뒷받침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포퓰리즘 성격의 선심성 예산을 차단하기 위해 총 134조 원을 삭감하겠다는 강경한 방침을 세웠다.

국민의힘은 특히 신고 포상금 예산이 올해 324억 원에서 내년 2,546억 원으로 1년 만에 8배가량 급증한 점을 지적하며, 이를 '국민 감시용' 예산이라 규정하고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통령비서실 특수활동비 82억여 원과 중대범죄수사청 특활비 42억여 원도 삭감 대상에 포함했다. 반면 민주당은 주거, 서민금융,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 지방 성장, 교육 인프라, 재난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산 증액을 추진하며 맞서고 있다.

미래대응기금과 메가프로젝트 둘러싼 지역 갈등 예고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 예산 심사 과정에서도 격돌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국가 반도체 경쟁력 확보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21조 3,000억 원 규모의 예산 편성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해당 프로젝트가 호남 지역에 대한 특혜나 서남권 차별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철저한 검증을 예고했다. 또한 추가 세수를 기반으로 신설될 미래대응기금 역시 여야의 핵심 쟁점이다.

민주당은 미래대응기금이 첨단 산업 육성과 미래 세대를 위한 재정적 토대가 될 것이라며 원안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산업 대전환기에 대비해야 하며, 청년과 지방, 교육 분야를 위해 기금이 원안대로 처리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기금의 여유자금 104조 원을 활용해 국가채무를 상환한다면 약 3조 원의 이자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이를 통해 사립대 등록금을 서울대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반박한다. 아울러 내국세 일부가 기금으로 적립되면서 지방교부세가 줄어드는 재정 양극화 문제와 전남·광주 통합 지원에 투입될 3조 5,000억 원의 형평성 문제도 지적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12월 2일로 예정된 예산안 본회의 법정 시한 준수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국정조사·특검법 추진에 필리버스터 맞불

입법 전쟁의 화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국정조사를 당론으로 정하고, 오는 5일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요구서를 보고한 뒤 다음 주 조사계획서를 채택해 국조를 가동할 계획이다. 또한 윤석열 정부 검찰의 쌍방울 대북 송금 및 대장동 사건 관련 조작기소 의혹을 규명할 '조작기소 특검법안'을 이달 중 처리하려 한다. 이 외에도 도시정비법 개정안과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 처리도 검토 중이다.

국민의힘은 5일 본회의 개최 여부부터 여야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도시정비법에 대해서는 용적률 혜택이 소형 주택에만 국한되는 점을 문제 삼고, 유공자법은 개념과 기준이 모호하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특히 정점식 원내대표는 국정조사를 사법부 탄압이자 삼권분립 위반으로, 조작기소 특검법을 이재명 대통령을 위한 공소 취소용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쟁점 법안들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필요시 장외집회까지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법안을 쪼개서 처리하는 '살라미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