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되는 HBM 시장, 삼성전자의 대역전극 예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초호황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그동안 SK하이닉스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삼성전자가 반격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선보일 6세대 제품인 HBM4를 핵심 병기로 삼아 시장 점유율 회복에 대한 강력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특히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생산 능력과 수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며, 기존 시장의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한 총력전에 돌입한 모습이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사업부 부사장을 맡고 있는 김재준 부사장은 지난 3분기 실적과 관련해 의미 있는 지표를 제시했다. 그는 당사의 HBM 매출이 직전 분기와 비교해 3배 넘게 급증했으며, 전체 HBM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60% 선까지 올라섰다고 설명했다. 김 부사장은 하반기 목표였던 '전체 D램 점유율과 맞먹는 수준의 HBM 점유율 확보'가 이미 3분기에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지난 2분기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이 약 38%였음을 고려할 때, 3분기 HBM 점유율 역시 30% 후반대에 안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좁혀지는 점유율 격차와 SK하이닉스의 수성 전략
시장 조사 기관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만 해도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56%)와 삼성전자(23%)의 점유율 격차는 33%포인트에 달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올해 2분기 들어 양사의 점유율이 각각 50%와 33%로 기록되며 격차는 17%포인트까지 크게 줄어들었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차세대 제품을 통해 추격의 속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시장 선두를 지키고 있는 SK하이닉스 역시 기술 경쟁력과 고객 수요를 바탕으로 수성 의지를 다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말 진행된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내년도 공급 전략을 구체화했다. 세일즈&마케팅 담당 임원은 현재 고객사들로부터 들어오는 HBM3E 요청 물량이 회사가 공급할 수 있는 양보다 두 배 이상 많을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고객들이 SK하이닉스의 제품을 매우 선호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설명이다. 또한 양산 수율이 당초 계획보다 높게 나타남에 따라 목표 수치도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역대급 실적 뒷받침하는 메모리 호황과 공급 부족
범용 D램 가격의 상승세와 고부가가치 메모리 제품의 판매 호조는 양사의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올해 3분기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과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은 약 190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가속기 '베라 루빈' 등에 탑재되는 핵심 메모리 수요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인프라 투자 확대와 맞물려 급증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확보된 공급 물량이 목표 가격에 맞춰 이미 완판(Sold-out) 상태라고 밝혔다. 또한 기존에 맺은 장기 계약과 현재 협의 중인 수요를 종합해 볼 때, 2029년까지의 D램 및 HBM 생산 물량이 사실상 모두 소진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향후 매출과 이익은 올해보다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 담당 임원은 과거의 사이클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수익성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기술 중심의 조직 개편과 글로벌 대응 강화
양사는 차세대 반도체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고객사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인적 쇄신도 단행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30일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을 유임시킨 가운데, 미주총괄 직제를 신설하고 기존 개발총괄이었던 안현 사장을 해당 직책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삼성전자 역시 향후 인사와 조직 개편의 초점을 기술 역량 강화에 맞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성전자는 미국 테일러 공장의 가동을 준비하며 글로벌 대응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남석우 파운드리사업부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의 미주 지역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기술 개발과 글로벌 고객 대응을 결합한 조직 운영이 주목받고 있다. 메모리 공급 부족이 장기화되는 흐름 속에서 양사의 기술 및 조직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