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즉시 판정하는 AI 진단 기술의 확산
공장 설비가 멈춘 뒤에 수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고장 징후를 사전에 포착해 정비하는 '예지보전' 기술이 울산 화학 제조 현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작업자가 휴대용 장비를 이용해 설비를 순회하며 데이터를 측정하면, 단말기에 탑재된 인공지능(AI)이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결함 유형과 이상 여부를 판별한다. 이러한 화학 공정용 진단 기술은 최근 자동차 부품 공작기계 분야로까지 적용 범위가 확장되는 추세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지원하는 '제조업 AI 융합 기반 조성 사업'이 자리 잡고 있다. 울산시와 울산정보산업진흥원은 2024년부터 올해까지 수요맞춤형 6개 과제를 포함해 광역연계형 2개, 확산거점형 1개 등 총 9개의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기술 전환을 이끌고 있다.
휴대용 장비로 관리 부담 낮춘 '포터블 AI'
화학 공장 내부에는 펌프, 블로어, 교반기 같은 회전 설비가 광범위하게 배치되어 있다. 모든 설비에 고정형 진단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과 관리적 부담을 초래한다. 이에 대응해 예측진단기술이 선보인 '포터블 AI 예지보전 시스템'은 작업자가 이동하며 점검할 수 있는 휴대용 장비 형태를 채택해 운영 효율을 극대화했다.
이 시스템은 열화상 데이터와 음향 방출, 진동, 육안 점검 결과 등을 통합하여 이상 상태를 분석한다. 특히 단말기 자체에 경량화된 AI 모델을 탑재함으로써, 외부 통신망이나 서버 연결 없이도 현장에서 즉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독립성을 갖췄다.
지난해 울산 내 화학 설비 20대를 대상으로 수행한 초기 모델 실증은 공인 시험에서 목표치를 상회하는 성과를 거뒀으며,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의 AI 신뢰성 검증도 마쳤다. 올해는 TTA AI 신뢰성 인증을 추진하는 동시에, 실증 대상을 울산 화학 기업 1곳의 설비 140대와 울산·양산 자동차 부품 기업 3곳의 가공설비 10대 등 총 150대 규모로 확대한다. 또한 결함 종류를 세분화하여 구분하는 알고리즘 고도화와 저전력 무선 진동센서 개발도 병행 중이다.
김종면 예측진단기술 대표는 고정형 시스템 설치가 까다로운 현장에서도 단 한 대의 장비로 다수의 설비를 진단할 수 있는 것이 포터블 AI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기술을 중소기업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발전시킬 계획이며, 실증 데이터셋과 AI 모델 2종을 울산AX랩 플랫폼에 개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단기 임대나 체험형 실증을 거쳐 장기적으로는 웹 기반의 구독형 서비스로 사업화한다는 구상이다.
자동차 부품 공정으로 확장되는 진단 기술
비츠로시스는 지난해 SK케미칼과 에이스앤이의 화학 공정에서 검증한 AI 진단 기술을 자동차 부품 제조 분야로 넓히고 있다. 올해는 경남 태창기계와 울산 한국몰드의 공작기계에 해당 시스템을 구축했다. 업종이 바뀜에 따라 설비 구조와 운전 조건, 데이터 분석 방식이 달라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츠로시스는 에지 게이트웨이와 다양한 통신 방식을 지원하는 기술로 대응했다. 공작기계의 전류와 진동, 설비 제어장치(PLC)의 가공 현황 및 회전수 데이터를 연결해 분석하는 방식이다.
현재 두 공장에서 수집된 공작기계 전류 데이터는 1억 2,000만 건을 넘어섰다. AI는 이러한 센서 및 운전 데이터를 분석해 절삭공구와 베어링의 상태를 진단하고 이상 징후를 포착한다. 작업자는 웹 화면을 통해 설비 상태와 알람을 확인하며, AI의 판정과 함께 변화된 센서 데이터를 함께 제공받아 판단 근거를 검토할 수 있다.
비츠로시스에 따르면 화학 설비 진단 AI 모델의 정확도는 1차 연도 99%에서 2차 연도 99.67%로 향상되었다. 에이스앤이의 고점도 수지 생산 공정에서는 반응기 온도 패턴을 활용해 알고리즘을 정교화했다. 자동차 부품 현장의 AI 모델 신뢰성과 생산성 향상에 대해서는 별도의 공인 검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기재 비츠로시스 대표는 화학 공정 기술을 자동차 부품 공작기계에 맞춰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현장 특화 데이터 확보의 중요성을 확인했으며, 다양한 설비 데이터를 연결하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데이터 기반의 정밀한 배관 부식 관리 플랫폼
배관의 부식 양상은 유체의 특성, 압력, 온도, 재질에 따라 달라지므로 도면과 정비 이력, 검사 보고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자료가 산재해 있으면 분석에 시간이 소요되고 숙련자의 경험에 의존하기 쉽다는 한계가 있다. 딥아이는 이수스페셜티케미컬 온산공장의 분자량조절제(TDM) 공정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수요 기업이 제공한 도면과 운영 데이터를 바탕으로 확산거점형 과제인 배관 부식관리 플랫폼을 추진 중이다.
이 플랫폼에는 도면 해석, 부식 진단, 수명 예측, 의사결정이라는 4종의 AI가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도면 해석 AI가 정보를 추출하면, 부식진단 AI가 국제 표준과 공정 조건을 대조해 원인을 추정한다. 이어 수명예측 AI가 검사 이력을 토대로 배관의 잔존 수명과 두께 감소 속도를 예측하며, 마지막으로 의사결정 AI가 위험도와 검사 계획을 제안한다.
개발 목표는 도면 데이터 추출 정확도 90%, 부식 원인 판단 정확도 95%, 배관 두께 감소 속도 예측 오차 ±15% 이내다. 딥아이는 이미 열교환기 AI 비파괴검사 솔루션을 상용화해 국가신기술(NET) 인증을 획득한 바 있다. 김기수 딥아이 대표는 숙련자의 경험 대신 데이터와 국제 표준에 근거한 정량적 판단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며, 온산공장에서 검증한 모델을 다른 사업장으로 확산해 화학 설비 사고 위험을 낮추겠다고 강조했다.
이 세 기업의 사례는 울산의 제조 AI 기반 구축 성과를 대변한다. 다만, 이 기술들이 타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될 수 있는지, 그리고 임대 및 구독형 서비스가 중소기업의 도입 문턱을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는지는 향후 사업화 과정에서 검증해야 할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