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탱하는 공유 자산, 커먼즈의 회복
물과 숲, 의료 서비스 및 교육과 같이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며 공동의 관리와 향유가 요구되는 영역을 '커먼즈'라고 일컫는다. 사이토 고헤이와 6인의 저자가 집필하고 한디디 외 2인이 번역한 <커먼즈의 자치론>(동녘, 352쪽, 1만9800원)은 이러한 커먼즈를 복원하고 이를 함께 운영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자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복합위기 시대, 시민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현재 인류는 기후변화와 전쟁, 그리고 경제적 위기가 서로 얽히며 악순환을 일으키는 복합적 위기 국면에 처해 있다. 상품 리뷰에 의존해 소비를 결정할 만큼 타율적인 삶에 익숙해진 시민들은 스스로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저자들은 시민의 자치 능력이 약화된 틈을 타 대기업과 정치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규칙을 제정하며 사유화를 가속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다만 자치가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에, 외부인을 배제하거나 내부적 위계질서를 강요하지 않도록 타인에게 열려 있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운영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장에서 발견하는 자치의 구체적 실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의 저자로 알려진 사이토 고헤이를 포함한 7명의 필자들은 대학과 지방정치, 농사, 정신의료, 시민과학, 가게, 사회운동 등 다양한 삶의 현장을 넘나들며 공동체를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책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직접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는 여성들의 모습이나, 구청장 후보를 찾기 전 공약부터 먼저 수립하는 시민들, 그리고 아픈 가게 주인을 대신해 운영을 돕는 단골손님들의 사례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수평적 연대와 조직화의 결합
커먼즈는 월가 점령 운동과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의 저작인 <제국>, <다중>, <공통체> 3부작을 거치며 사회를 바꾸는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사이토 고헤이는 이러한 운동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점 또한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는 보조금 수령에만 급급해 본연의 변혁 동력을 상실한 사회운동의 모습과, 현장의 권력 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꾸지 못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비판한다. 대신 그는 삶에 필요한 요소들을 함께 생산하고 관리하며 결정권을 회복할 것을 제안한다. 즉, 수평적인 연대와 운동의 지속성을 위한 조직화를 결합한 이른바 '비스듬한' 자치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이끌어내자는 것이다.
번거로움을 감내하는 공동체적 책임
이러한 구상은 자칫 이상주의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책의 나가는 글에서 언급된 교토대 학생 게시판 사례처럼, 타인의 전단지를 제거하고 자신의 게시물만 붙이는 사소한 갈등조차 대화와 조율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관리를 학교 측에 전적으로 위임하면 편리할 수 있으나, 이는 게시 여부를 결정할 권한까지 함께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공동의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 바로 자치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