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수요 폭증 속 뒤늦은 고리 3·4호기 재가동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설계수명이 다해 가동이 중단되었던 고리 3·4호기에 대해 재가동 허가 결정을 내렸다.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과 첨단 기술 분야의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두 원전의 가동 재개는 시기적으로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다행스러운 측면이 있다. 고리 3호기와 4호기의 합산 발전 용량은 2GW를 상회하는 규모로, 이는 대형 반도체 생산 공장 여러 곳을 동시에 돌릴 수 있는 막대한 전력량이다.

탈원전 여파와 제도적 결함이 초래한 가동 중단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를 온전히 반기기는 어렵다. 고리 3호기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4호기 역시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전력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정부의 탈원전 기조와 맞물려 심사 절차가 지연된 결과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계속운전 신청 자체가 불가능한 분위기였으며, 정부 교체 후 4개월이 지나서야 한국수력원자력이 관련 허가를 신청할 수 있었다. 현 정부 들어서도 방대한 법정 심사 항목과 규제기관의 보수적인 태도, 심사 인력 부족 등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특히 현행 제도는 원전이 가동을 멈췄던 기간을 수명 연장 기간에 포함시키고 있어, 실제 운전할 수 있는 기간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미국 '적기 갱신' 제도와 비교되는 한국의 행정

원전 선진국인 미국의 사례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사업자가 정해진 기한 내에 신청을 완료했다면, 심사가 지연되더라도 원전이 중단 없이 계속 가동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적기 갱신(Timely Renewal)'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행정적인 처리 지연 때문에 무탄소 전력을 인위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은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에너지 안보를 위한 제도 개선의 시급성

현재 국내에서는 한빛, 한울, 월성 등 주요 노후 원전들의 계속운전 심사가 줄을 잇고 있다. AI와 반도체 분야의 글로벌 패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저렴하고 안정적인 무탄소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고리 3·4호기는 설비 보완과 현장 점검 등 남은 절차를 마친 뒤 내년 초에야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사례를 계기로 심사 기간을 실질적으로 줄이고, 설계수명 종료 후 정지된 기간을 연장 기간에서 제외하는 등 제도적 결함을 신속히 보완해야 한다. 낡은 행정 관행과 규제 지연이 국가 에너지 안보의 취약점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