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해진 기억 속에서 찾아낸 역사의 자취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간의 기억은 무력해지기 마련이며,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장소에 대한 공동의 기억 또한 기대만큼 견고하거나 끈끈하게 유지되지 못한다. 소설가 이호철이 1966년 2월 동아일보를 통해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장편 연재를 선보인 지 어느덧 6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서울은 과거 한양과 경성 시절이 남겼던 고유한 흔적들을 대부분 상실하며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이름에서 공간으로, 복원의 범위를 넓히다
최백순의 저서 ‘붉은역사답사기:경성편’(롤러코스터, 2만 2천원)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특정한 장소들이 존재함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저자는 지난 2017년, 현대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사실상 소멸한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삶을 재조명한 ‘조선공산당 평전’을 출간해 예상치 못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바 있다. 당시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이들을 역사의 전면에 복원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토로하면서도, 이들의 이름을 끊임없이 호명하여 역사의 한 줄에라도 남기는 것이 우리 세대의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혁명의 현장, 오늘날의 지번으로 되살아나다
출간 9년 만에 선보인 이번 신작에는 혁명가들의 성명뿐만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활동하며 숨 쉬었던 구체적인 ‘공간’들까지 보존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가 투영되어 있다. 책에는 1925년 4월 17일 조선공산당이 창당되었던 옛 중국 요릿집 아서원 터를 비롯해, 비타협적 민족 단일 운동을 전개했던 신간회 본부 터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서울청년회, 화요회, 북풍회 등 짧지만 강렬한 활동을 펼쳤던 여러 사회주의 단체들의 옛 회관 터도 포함되었다. 각 장의 끝에는 해당 공간들의 현재 모습이 담긴 사진과 정확한 지번 정보가 수록되어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익숙한 장소의 역사적 실체를 새롭게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