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체불 막는 단계적 사외적립 의무화
모든 사업장의 퇴직급여를 외부 전문기관에 미리 쌓아두는 사외적립 제도가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의무화된다. 기업이 지급해야 할 퇴직금을 내부적으로 보유하지 않고 외부로 적립하게 함으로써 퇴직금 체불 사태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퇴직연금의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민간 금융사가 참여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도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29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와의 당정 협의를 마친 뒤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지난 2월 노사정이 공동으로 선언했던 퇴직연금 관련 합의 사항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한 것으로, 사외적립 의무화와 기금형 제도의 활성화를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사외적립 의무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내년에 준비 기간을 거친 뒤 2028년에는 100인 이상 사업장이 우선 적용 대상이 되며, 2029년에는 10~99인 규모 사업장으로, 2030년에는 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까지 확대된다. 해당 의무는 각 단계별 시행 시점 이후 새롭게 발생하는 계속근로기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이러한 조치는 후불임금 성격을 띠는 퇴직금을 사전에 외부로 분리해 체불 위험을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 실제로 지난해 발생한 전체 임금체불액 중 퇴직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8229억 원으로, 전체의 41.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지원책 및 기금형 퇴직연금 모델
정부는 사외적립 도입에 따른 중소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재정 지원책도 마련했다. 30인 미만 중소기업이 사외적립을 조기에 이행할 경우, 최저임금의 130% 미만을 받는 노동자에 대해 사업주 부담금의 10%를 정부가 지원한다. 또한 50인 미만 중소기업이 퇴직연금을 새롭게 도입하면 경영자금 융자 시 대출금리 2%포인트를 감면해 주는 혜택도 제공한다. 이를 위해 내년도 고용노동부 예산안에는 총 122억 원의 예산이 편성되었다.
사외적립을 이행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적 기금형 퇴직연금인 ‘푸른씨앗(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에 자동으로 가입되도록 조치하며, 적립금이 기준에 미달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정기적인 감독도 강화할 방침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노사정 합의에 따라 전문성을 높이고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활성화된다. 현재 중소기업 위주로 운영되는 푸른씨앗 모델을 넘어, 민간 금융회사가 수탁법인을 세워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하나로 모아 공동으로 운용하는 방식이 도입된다. 운영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민간 금융회사가 단독 혹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영리 목적의 수탁법인을 만드는 ‘금융기관 개방형’, 복수의 사용자나 전국 단위의 노사단체 연합이 비영리 법인을 설립하는 ‘연합형’, 그리고 공공기관이 직접 운용하는 ‘공공기관 개방형’이 그것이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 국민연금공단은 운영 주체에 포함되지 않았다.
수익률 중심의 제도 개편과 노후 소득 보장
기금형 퇴직연금은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 한 사업장 내에서 계약형과 기금형을 동시에 설정하거나 여러 개의 기금형 모델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며, 노동자 대표의 동의가 있다면 특정 기금형 모델을 기본값으로 지정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직접 운용이 어려운 노동자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선택권을 넓힐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금 운용기관은 노동자의 노후 자금을 책임지는 만큼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친다. 노사, 전문가, 정부가 참여하는 인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만약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원칙을 어길 시에는 손해배상책임이 뒤따른다.
수익률 개선을 위한 추가 대책도 포함됐다. 현재 70%로 묶여 있는 IRP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단계적으로 풀고, 계약형 퇴직연금 사업자에 대한 평가 방식도 수익률 중심의 정량적 평가로 전환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47개 퇴직연금 사업자의 수익률을 모두 공개해,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업체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참고로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6.47%로, 국민연금(18.82%)이나 공무원연금(17.2%)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또한 퇴직금을 일시금보다 연금 형태로 수령하도록 유도해 노후 자금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한다. 주거비나 의료비 등 긴급한 자금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중도 인출 대신 활용할 수 있는 담보 대출 상품 출시를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된다. 아울러 퇴직 시 별도의 일시금 수령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연금 방식으로 지급되도록 하는 제도 도입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이번 내용을 담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다음 달 마련해 연내 국회 통과를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