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 범죄로 격상된 산업기술 유출
산업기술 유출이 국가 안보에 위협을 가할 경우 이를 안보 범죄로 다스릴 수 있는 법적 토대가 구축되었다. 법무법인 화우의 이세정 변호사는 형법 제98조의2, 즉 개정 간첩죄의 시행에 대해 이와 같이 평가했다. 기존 간첩죄의 대상이 '적국'에 한정되었던 것과 달리, 개정법은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까지 범위를 넓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특정 요건을 갖춘 산업기술 탈취 행위는 이제 국가 안보를 침해하는 범죄로 규정될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호사는 지난 10월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기존 법제의 한계를 지적했다. 과거에는 산업기술보호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을 통해 기술 유출을 처벌해 왔으나, 외국 정부나 특정 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개입해 핵심 기술을 빼앗는 행위를 국가 외적 안전에 대한 침해로 간주하기에는 법적 근거가 부족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개정은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방위산업 등 국가 전략 산업의 기술 보호를 기업의 재산권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의 관점에서 다룰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국가기밀' 판단 기준과 증거 확보의 난제
기업 현장에서는 이번 법 개정이 기술 유출에 대한 심리적 억제력을 높일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이 변호사는 단순 재산 범죄가 아닌 간첩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한 경고 효과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무적인 관점에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재해 있다. 가장 큰 쟁점은 간첩죄 성립의 전제 조건인 '국가기밀'의 범위를 어떻게 확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모든 기업의 기술이 국가기밀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며,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형법상 국가기밀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판례와 법리에 따르면, 정보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비공지성'과 유출 시 국가 안전에 실질적 위험을 주는 '실질비성'이 핵심 판단 근거가 된다. 이 변호사는 기술의 공개 정도, 국내외 기술 격차, 연구개발에 투입된 비용, 경쟁사의 기술 확보 가능성, 그리고 유출 시 국방 역량이나 산업 기반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술 유출 범죄의 특성상 외국 정부의 지령문 같은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 매우 어렵다는 점도 수사의 난관이다. 따라서 접촉 시점, 금전 거래, 대량의 데이터 다운로드, 파일 암호화 및 외부 전송, 증거 인멸 정황 등 다양한 간접 사실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해 범행 구조를 입증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법적 공백 메우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
개정법이 '중개' 행위를 명시하고 있는 만큼, 기술 보유자와 외국 세력을 연결하는 브로커 역시 지령이나 사주 등의 요건이 충족되면 처벌 대상이 된다. 다만, 외국 사기업에 대한 적용 범위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단순 외국 기업을 '외국에 준하는 단체'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배후에 외국 정부의 지배력이나 자금 지원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일반적인 상업 분쟁을 간첩죄로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변호사는 안보 범죄의 특성상 처벌 범위가 과도하게 넓어질 위험을 경계하며,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회에서 추진 중인 '산업스파이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변호사는 처벌 조항의 보완과 더불어 피해 기업의 수사 및 재판 참여권 확대도 강력히 제언했다. 기술의 비밀성과 중요성을 가장 잘 아는 기업이 법정에서 직접 설명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피고인이 기술의 공개성을 주장하며 반박할 때, 기업 전문가 없이 기술의 특수성을 입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기업의 영업비밀이 추가로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은 핵심 기술과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접근 권한을 엄격히 관리해야 하며, 유출 의심 시 사실관계를 입증할 기록을 남기는 사전 대응이 필요하다. 이 변호사는 오는 11월 24일 국가정보원이 주최하는 '2026 산업보안컨퍼런스'에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 관계자들과 함께 이러한 대응 방안과 관리 기준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