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견인한 사상 첫 수출 1조 달러 시대

인공지능(AI) 산업의 급격한 확산이 반도체 수출을 강력하게 밀어 올리면서, 한국의 연간 누적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은 이번 기록을 달성할 경우 독일, 미국, 중국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수출 1조 달러'라는 대기록을 세운 국가가 된다.

산업통상부가 1일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93.7% 폭증한 1152억 8000만 달러(약 154조 원)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9월에 기록했던 1211억 달러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월간 수출액이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의 누적 수출액은 9300억 달러에 달하며, 연간 1조 달러 달성까지 남은 잔액은 700억 달러뿐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1월 중에는 연간 수출 1조 달러 고지에 확실히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까지 이 기록을 세운 국가는 미국(2006년), 중국(2007년), 독일 등 단 세 곳뿐이다. 1000억 달러에서 1조 달러로 도약하는 데 중국은 13년, 독일은 30년, 미국은 31년이 소요되었는데, 한국은 1995년 1000억 달러 달성 이후 31년 만에 이 고지에 도달하게 된다.

수출 4대 강국 진입 가능성과 품목별 실적

한국이 세계 수출 4강 체제에 진입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한국무역협회의 상반기 국가별 수출 순위를 살펴보면 1위 중국(2조 1254억 달러), 2위 미국(1조 2383억 달러), 3위 독일(9409억 달러), 4위 네덜란드(5186억 달러), 5위 한국(4962억 달러) 순이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한국의 가파른 수출 성장세를 고려할 때, 연간 기준으로는 네덜란드를 추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출 성장의 핵심 동력은 단연 반도체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564억 4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59.4%나 급증했다. 이는 AI 관련 설비 투자가 늘어나며 메모리 반도체 수요와 가격이 동시에 상승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은 49%로, 사실상 수출의 절반을 책임졌다.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품목에서도 전년 대비 34%의 증가율을 보였으며, 20대 주력 품목 중 18개가 성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AI 서버 인프라 투자로 인해 컴퓨터 수출은 496.6% 폭증한 58억 5000만 달러를 찍었다. 자동차 수출 역시 65억 5000만 달러로 18.1% 늘어나며 10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고, 화장품(57.5%), 바이오헬스(30.2%), 농수산식품(11.6%)도 10월 중 최대 실적을 냈다. 석유제품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단가 인상 효과로 80% 증가한 69억 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선박은 지난해 해양플랜트 수출에 따른 기저효과로 43.6% 감소했으며, 안경과 시계 등 패션잡화의 부진으로 생활용품 수출도 13.4% 줄었다.

무역 흑자 지속과 내수 침체의 명암

수입액은 중동 전쟁 여파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영향으로 전년 대비 36% 증가한 727억 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수입을 크게 앞서며 무역수지는 425억 달러 흑자를 기록, 2개월 연속 400억 달러 이상의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1~10월 누적 무역흑자는 2949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391억 달러나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이러한 수출 호황이 중소기업 현장까지 온기를 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3분기 말 기업 대출 연체율은 0.49%로 2017년 2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금리 인상과 현금 흐름 악화로 인해 0.6%까지 치솟았다. 내수와 고용 지표 역시 위축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3분기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0.5% 감소하며 5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으며, 이는 지난해 1분기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반도체와 같은 기술·자본 집약 산업은 타 산업으로의 낙수효과가 작아 내수 회복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내수 활성화와 신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