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와 함께하는 삶, 경계의 존재들을 기록하다
인터뷰 도중 ‘은행’이라는 이름의 개가 정윤영 작가의 무릎 위로 올라와 짖는다. 눈을 마주치자 짖는 행동은 그에게 싸우자는 신호로 읽힌다. 옆에 있는 ‘단풍’이 역시 짖으며 반응한다. 이들은 정윤영이 임시 보호 중인 들개들이다. 흔히 들개라고 하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야생동물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유기견인 경우가 많으며 이들의 후손이 야생화되어 무리를 지어 살아가기도 한다. 은행과 단풍 역시 생후 한 달 반 무렵 함께 구조된 후손 격인 존재들이다.
정윤영은 전주 유기견보호소의 SNS 공고를 보고 달려가 2024년 12월 30일 보호자가 되었다. 10월에 태어난 이들에게 은행과 단풍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는 은주리, 사피, 우시쿠 등 유기묘와 길고양이들도 돌보고 있다. 지난달 19일 인터뷰 당시에도 그는 은행이와 단풍이를 동반했다. 2년 전 어린 들개의 임시 보호자로 시작한 그는 이제 상시 보호자로 자리 잡았다. 그는 서울 문래동에 위치한 ‘정글핌피’의 김유경 대표와 함께 들살림을 꾸리며, 들개 돌봄과 공존을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자본주의의 칼날 아래 놓인 생명과 노동
서울 문래동의 동물책 전문 서점인 정글핌피에서 만난 정윤영과 김유경은 ‘들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정윤영은 프로젝트 활동비를 마련하기 위해 제작한 ‘들에서 함께 춤을’이라는 문구의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이 프로젝트는 죽임과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공존의 길로 나아가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야생동물과 반려동물의 경계에 있는 존재들은 신고를 당하면 보호소로 이송되어 짧게는 10일, 길게는 한 달 안에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 탓에 들판의 한 평조차 이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서, 서로를 돌볼 용기를 내고자 시작된 활동이다. 이들은 지난 5월 혜리와 함께 <들에서 사라진 개들>을 출간했으며 북콘서트도 개최했다. 그에게 기록은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연대이자 투쟁이며 저항의 수단이다.
그의 기록 여정은 2013년 서울 노원구의 ‘우리 동네 기록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던 그는 르포 작가 송기역의 제안으로 2015년 <숨은 노동 찾기>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급식조리원, 장례지도사, 콜센터 상담원, 청소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정윤영 자신도 대학 시절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거쳤으며, 졸업 후에는 논술학원 강사로 일했다. 사교육 종사자라는 자각과 요가 강사 시절 겪었던 외모 평가, 카페에서의 감정노동 등은 그가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그를 르포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감춰진 사실을 드러내고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살처분 현장에서 목격한 ‘죽임의 외주화’
2024년 발간한 <동물의 자리>에서 그는 소가 단순한 고기가 아니라 생명임을 깨닫는 순간, 그리고 노동자들의 외침이 맞닿는 지점에서 자신의 세계관이 확장됨을 고백했다. 그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모든 것을 ‘자원’과 ‘소유물’로 취급하며,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건강이나 동물의 생존, 환경 파괴를 외면한다는 사실을 통찰했다. 특히 2024년 경기도의 한 살처분 현장에서 목격한 대규모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살처분이 단순한 동물 복지 문제를 넘어,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담당하게 되는 ‘죽임의 외주화’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공장식 축산 탈피, 사육 밀도 낮추기, 백신 및 방역 체계 개선 등 대안을 제시하며, 도축장에서 겪은 네팔 노동자의 사례를 통해 이 문제가 노동의 문제와도 맞물려 있음을 강조했다.
굴러가는 바퀴를 멈추려는 기록자
정윤영은 권력이나 자본의 편에 선 이들보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바퀴에서 어긋나거나 그 바퀴에 깔리는 존재들의 삶에 집중한다. 그는 ‘싸람’(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에 가입하여 소외된 투쟁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하는 주민들에게서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그는 정치권의 우경화와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흑백논리에 빠져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태도를 경계한다. 그는 특정 대상을 혐오하거나 없애버리려는 방식이 아닌, 구조를 들여다보고 대화를 통해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설령 시스템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자기모순을 안고 있을지라도, 그는 망해가는 세계 속에서도 모든 것을 뒤집어보기 위해 기록과 실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