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FDA 승인받은 베피로비르센, 치료 패러다임 바꾼다

만성 B형간염 환자들이 평생 약물을 복용하며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해야 했던 기존의 치료 방식에 거대한 변화가 예고됐다. 특정 기간 동안만 약을 투여해도 ‘기능적 완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신약 ‘베피로비르센(제품명 힙세고)’이 지난 8월 일본 후생노동성의 승인을 받은 데 이어, 이달 2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도 신약 허가를 획득했다. 임상 3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선정 기준을 충족한 환자 5명 중 1명이 24주 동안 주 1회 투여를 마친 후 기능적 완치 상태에 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상훈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기존의 바이러스 농도 억제 전략은 여전히 간암 발생 위험을 안고 있었기에, 이번 완치 치료제의 등장이 간암 예방 측면에서 임상적 전환점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간경변 없어도 간암 위험…B형간염의 치명적 특성

간에 염증이 발생하는 간염 질환은 원인 바이러스에 따라 A형부터 E형까지 분류되며, 급성과 만성으로 구분된다. 이 중 B형간염은 감염 규모가 매우 방대할 뿐만 아니라 간암 발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만성 B형간염 감염자 수는 약 120만 명에 달하며, 인구 10만 명당 18.9명이 B형간염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간수치가 정상 범위이거나 간경변증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간암이 발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안상훈 교수는 B형간염 바이러스가 간세포 핵 내부에 침투해 유전 정보를 유지하며 증식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 DNA가 인체 유전체에 삽입되는 ‘통합(integration)’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바이러스 DNA의 통합과 단백질 변화가 간암을 유발하므로 간경변 유무와 상관없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RNA 표적 공략해 면역 체계 회복 유도

새로운 치료 전략인 베피로비르센은 바이러스가 증식 과정에서 매개체로 활용하는 알엔에이(RNA)를 정밀하게 타격한다. 바이러스 유전정보가 단백질로 발현되어 새로운 바이러스가 생성되는 단계의 RNA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기존 항바이러스제들이 주로 바이러스 DNA 복제를 막는 데 집중했다면, 이 신약은 RNA를 표적으로 삼아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함과 동시에 B형간염 표면항원(HBsAg)의 생성까지 줄이는 데 핵심이 있다. 기존 핵산유사체 치료제는 DNA 복제 억제에는 효과적이었으나 표면항원 생성까지 충분히 억제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표면항원이 체내에 계속 존재하면 면역반응이 저하되는데, 기존 치료제의 표면항원 자연 소실률은 연간 1% 수준에 불과해 평생 약을 먹어야 했다. 반면 베피로비르센은 항원 농도를 낮춰 저하된 면역 체계의 회복을 유도함으로써 완치 가능성을 높인다.

간암 위험도 급감 기대…기존 치료 유지 당부

해외 연구진이 만성 B형간염 환자들을 8년 이상 추적 관찰한 결과, 기존의 바이러스 억제 치료에 더해 표면항원 소실까지 달성한 기능적 완치 환자군에서는 간암 발생 위험도가 0.6%로 급격히 낮아졌다. 이는 연간 0.1% 미만의 매우 낮은 수치다. 반면 바이러스 억제에 실패한 환자는 7.8%, 바이러스 억제에는 성공했으나 표면항원이 남아 있는 환자는 5.6%의 위험도를 보였다. 다만 이는 관찰연구를 통한 상관관계일 뿐 신약의 직접적인 예방 효과가 입증된 것은 아니다. 안 교수는 기능적 완치율을 높이는 기술이 장기적으로 간암 예방에 기여할 것이라면서도, 신약의 국내 도입 전까지는 기존 치료를 철저히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환자들은 항바이러스제를 임의로 끊지 말고, 금주와 적정 체중 유지를 통해 대사이상지방간을 예방해야 하며, 고위험군은 6개월마다 간 초음파와 혈청 알파태아단백(AFP) 검사로 정기적인 감시를 지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