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향상이 불러온 업무량의 확장

클로드, 제미나이, 챗GPT 등 개인별 맞춤형 인공지능(AI) 도구가 일상화된 시대다. AI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개인적 활용을 넘어 업무 현장으로의 침투 속도도 매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부터 6월 사이에 취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8%가 이미 생성형 AI를 업무에 도입한 상태였다. 해당 조사에서 AI를 활용하는 인원들의 업무 시간은 평균 3.8%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주 40시간 근무 기준 약 1시간 30분에 해당하는 수치다. AI의 처리 능력과 활용도가 1년 전과 비교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업무 시간 단축 효과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기술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실제 퇴근 시간이 1시간 30분 앞당겨졌다고 체감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AI가 확보해 준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AI를 활용하면 며칠이 소요될 법한 과업을 단 몇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 AI와 대화하며 일정을 점검하거나 주요 이슈를 브리핑받기도 하고, 퇴근길에는 자료 조사를 지시해 둔다. 밤사이 도착한 답변을 검토하고 수정 지시를 내리는 과정도 일상화되었다. AI가 없었다면 시도조차 못 했을 일들을 수행하며 효율성에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 역설적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허문 AI가 업무 영역과 시간의 경계마저 무너뜨렸음을 깨닫게 된다.

노동 강도 심화와 고용 시장의 변화

지난 2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통해 공개된 UC버클리대의 연구 결과는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한다. 미국 내 기술 기업 종사자 200명을 대상으로 8개월간 심층 면접과 관찰을 진행한 결과, AI를 사용하는 직원일수록 업무 속도는 빨라졌으나 오히려 업무 범위가 확장되고 근무 시간은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났다. 즉, AI 덕분에 일을 빨리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영역이 넓어지면서 노동 강도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업무 성과물이 어떻게 분배되느냐는 점이다. 만약 기업이 늘어난 생산성을 임금 인상이나 노동 시간 단축으로 돌려준다면 AI의 효율성은 긍정적으로 체감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AI 기술의 발달은 오히려 채용 급감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며, 한국은 해고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구조라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AI가 아껴준 시간이 여유로 이어지지 않고, 남은 인원들의 업무량만 가중시키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기술의 진보와 보상의 불일치

지난 31일 한국을 방문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삼성 계열사 사장단에게 전달한 '코덱스 마이크로'는 단순한 신제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3개의 키만 갖춘 채 지시와 승인, 거절 기능에 특화된 이 작은 키보드에 대해, 올트먼은 AI 시대에는 기존의 전체 키보드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우리가 마주할 노동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듯하다.

한국은행의 올해 후속 연구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경험하는 업무 시간의 효율화는 실제 생산성 증대로 직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성과가 개인의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업무 방식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성과가 곧바로 수입이 되는 자영업자나 전문직 계층에서는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이 나타났다. 기술은 시간 효율을 만들어내지만, 그 혜택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돌아갈지는 결정해주지 않는다. 급변하는 기술의 속도에 매몰되기보다, AI가 확보해 준 시간을 인류가 어떻게 누릴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