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령과 숲의 변화
한여름의 무더위가 물러가면 공기 중에 섞인 바람의 향취부터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나뭇잎들은 계절의 흐름에 맞춰 가을 색채로 서서히 옷을 갈아입으며, 때로는 성급하게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땅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동네 뒷산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발등에 껍질만 남은 밤송이가 툭툭 부딪히기도 하고, 곳곳에 숨겨진 작고 동글동글한 도토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지금 당장 눈에 띄지 않더라도, 인적이 끊긴 고요한 시간대에는 겨울철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는 귀여운 다람쥐 가족이 인근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채집과 생태계의 갈등
이러한 풍경을 상상하며 산을 내려오던 중, 무언가에 홀린 듯 도토리를 줍는 데 열중하는 등산객들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그들이 촘촘하게 수집한 도토리들은 각자의 거처로 옮겨질 것이다. 이들이 모은 도토리가 겨울을 나기 위한 저장용인지, 아니면 그저 채집하는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소비되고 잊힐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신경림 시인이 쓰고 김슬기 작가가 그림을 그린 '아기 다람쥐의 모험'(바우솔, 2020) 속 위태로웠던 여정을 떠올리면, 마치 부모 다람쥐의 마음이 된 듯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구와 숲 모두 인간만의 소유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도토리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것일까. '다람쥐에게 양보하세요'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윤진희 책읽는사회문화재단 풀뿌리독서팀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