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조 원 규모의 공격적 시설투자 단행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시장의 폭발적인 반도체 수요에 발맞춰 올해 반도체 분야에만 총 76조 8000억 원을 투입한다. 이번 결정은 신규 메모리 생산 거점 확보와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 구축에 집중되어 있다. 다만 대규모 설비 투자가 실제 제품 생산량 증대로 연결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메모리 시장의 공급 부족 현상은 2028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 29일 진행된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연간 총 시설투자액을 84조 4000억 원으로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체 투자금 중 약 91%에 달하는 76조 8000억 원이 반도체 부문에 할당되었으며, 이는 지난해보다 29조 3000억 원이 늘어난 수치다. 디스플레이 부문에는 3조 9000억 원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미국 테일러 공장 및 첨단 공정 인프라 확충
시장 수요의 변화와 중장기적인 공급 확대 전략에 따라 삼성전자는 신규 팹(Fab)과 클린룸 등 핵심 생산 인프라를 대폭 늘릴 방침이다. 파운드리 사업의 경우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을 기반으로 2나노 및 4나노 등 초미세 첨단 공정의 생산 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며, 첨단 패키징 기술에 대한 투자도 병행한다. 다만 메모리와 파운드리 각각에 할당된 구체적인 투자 비중은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 테일러 공장은 클린룸 가동과 주요 설비의 반입을 마친 상태이며, 실제 웨이퍼를 투입하기 위한 생산라인 구축 단계에 있다. 삼성전자는 AI 고객사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추가적인 팹 건설과 생산 능력 확대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특히 내년에는 테일러 공장과 2나노 공정의 생산성 향상이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2028년까지 이어질 수급 불균형 전망
삼성전자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더라도 단기간에 공급 물량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컨퍼런스콜에 따르면 2027년에 설비투자가 급격히 증가하더라도, 공장 건설 비용의 상승과 반도체 장비 확보에 소요되는 긴 대기 시간 때문에 2028년까지는 생산량 확대가 제한적일 수 있다. 특히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생산 확대가 범용 D램의 공급 증가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HBM은 다이(Die) 크기가 커지고 공정 단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기존 D램보다 훨씬 많은 생산 능력을 요구하는 특성이 있다. 이로 인해 메모리 생산 비중이 HBM 쪽으로 쏠릴수록 동일한 웨이퍼를 투입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전체 메모리 비트(Bit) 수는 줄어드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에이전트 서비스의 확산으로 메모리 수요가 공급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신규 팹 건설과 장비 도입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2028년까지는 수급 상황이 매우 빠듯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클린룸 등 기초 생산 인프라는 선제적으로 확보하되, 실제 장비 도입 시점은 고객의 수요와 시장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조절할 계획이다. 이는 급증하는 AI 반도체 수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중장기적인 공급 변동성에 따른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