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재가 불러온 중국의 패키징 기술 도약

미국이 첨단 반도체 장비와 소재에 대해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하면서, 중국이 오히려 패키징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해 상당한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29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한국공업화학회 2026년도 추계학술대회에서 윤창민 인하대 고분자공학과 교수는 중국의 패키징 기술력이 매우 우수하다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삼성전자에서 패키징 관련 기술과 소재 개발을 담당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미세 공정에 필수적인 장비의 중국 수출이 막히자 중국이 패키징 기술로 눈을 돌려 집중 투자하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패키징은 웨이퍼에서 제조된 칩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회로와 연결하는 핵심 공정이다. 최근 반도체 소자의 미세화가 기술적 한계에 직면함에 따라, 여러 칩을 하나로 통합해 성능을 극대화하는 첨첨 패키징 기술이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현재 중국은 범용 패키징 시장에서 기술력을 쌓으며 세계적인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윤 교수는 대만의 TSMC가 주요 패키징 기업으로 자리 잡은 사례를 언급하며 시장 변화를 짚었다.

HBM 기술 격차와 소재 제어의 중요성

다만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첨단 패키징 영역에서는 한국과 중국 사이의 기술적 격차가 여전히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HBM은 다수의 D램을 수직으로 적층하는 방식이기에 칩 사이에 투입되는 다양한 소재의 물리적 특성을 정밀하게 다스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소재별로 열에 의한 팽창률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제품이 휘거나 파손되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할 수 있다. 윤 교수는 반도체 패키징이 단순히 칩을 연결하는 수준을 넘어, 칩 간의 간격에 들어가는 소재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기술이 성패를 가른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중국 기업들이 범용 제품에서는 높은 기술력을 보유했으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고도화된 칩 패키징 분야에서는 아직 충분한 경험을 쌓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HBM 같은 첨단 분야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이 이러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재 기술 강화가 필수적이다. 현재 일본 기업들이 핵심 패키징 소재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소재를 개발하는 것과 더불어 실제 제조 공정에서 성능을 검증할 수 있는 평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제시됐다.

국내 기업의 도전과 소재 국산화 과제

감광제(PR) 국산화에 성공한 동진쎄미켐은 이제 첨단 패키징 소재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정학기 동진쎄미켐 연구위원은 현재 고객사에 납품 중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 선진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를 거의 대등한 수준까지 좁혔다고 밝혔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전체 패키징 시장 점유율은 아직 10% 미만인 실정이다. 정 연구위원은 이 분야를 가장 빠르게 추격해야 할 핵심 영역으로 지목했다.

동진쎄미켐이 집중 공략하는 품목은 재배선층(RDL) 형성에 쓰이는 감광성 절연 소재인 빌드업 필름이다. 이는 미세 배선을 형성할 때 층 사이를 절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정 연구위원에 따르면 현재 빌드업 필름 시장은 일본의 특정 기업 한 곳이 95% 이상의 점유율을 독점하고 있어, 향후 산업 성장에 따른 공급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동진쎄미켐은 칩과 기판 사이를 보호하는 언더필 등으로도 개발 범위를 넓히고 있으며, 현재 고객사와 긴밀한 성능 평가를 진행 중이다. 반도체를 다층으로 쌓는 기술이 진화함에 따라 기존 일본 기업들도 새로운 소재를 개발해야 하는 만큼, 후발 주자인 국내 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려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