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 거리는 멀지만 안보적 고민은 닮은 꼴이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 속에서 미·중·러·일 강대국들 사이에 놓여 있으며, 튀르키예는 유럽과 러시아, 중동의 교차점에서 이란과 우크라이나 전쟁, 시리아 내전의 불안을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오는 3일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의 협력 방안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제3국 진출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에르도안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지난 10월 30일 서울 중구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에서 만난 파티흐 이을드즈(55) 신임 대사는 양국의 협력이 지리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을드즈 대사는 튀르키예가 한국의 중동, 아프리카, 유럽 시장 진출을 돕는 핵심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양국이 제3국 시장 공략을 위해 협력을 확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라크와 수단 대사를 거쳐 처음으로 아시아에 부임한 그는 한국인들의 따뜻한 환대 덕분에 현지 생활에 빠르게 적응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이 대통령의 튀르키예 국빈 방문 당시 발표된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공동성명’을 기점으로 양국 관계는 한층 깊어지고 있다. 2012년 수립된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주목되는 가운데, 이을드즈 대사는 내년 수교 70주년을 겨냥해 방산, 바이오, 첨단 기술 등 구체적인 분야에서 관계를 격상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방산 경쟁을 넘어선 공동 가치사슬 구축
양국은 방위산업 분야에서 경쟁과 협력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국산화율 80%를 넘기며 수출액 100억 달러를 돌파한 튀르키예의 방산 성장세는 중동과 동남아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과 경쟁 관계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을드즈 대사는 경쟁이 협력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며, 공동 생산을 통해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경쟁적인 제3국 시장에서 함께 승부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는 대표적인 협력 모델로 튀르키예의 차세대 주력전차인 ‘알타이’ 사업을 언급했다. 한국산 엔진과 변속기로 구성된 파워팩을 장착해 양산 단계에 접어든 알타이 전차는 현재 나토(NATO) 표준 충족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 대사는 한국과의 공동 생산을 통해 나토 기준을 통과할 경우, 중동과 아프리카를 넘어 유럽 나토 회원국 시장까지 진출할 길이 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양국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가치사슬을 구축한다면 타국보다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무역 불균형 해소와 에너지 안보의 다변화
무역 분야에서는 양국 간의 수입·수출 불균형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이을드즈 대사는 자유무역협정(FTA)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튀르키예에 수출하는 90억 9천만 달러에 비해 튀르키예의 대한국 수출액은 15억 7천만 달러에 그쳐 약 10배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균형 잡힌 무역 구조를 희망했다.
원전 협력 또한 중요한 현안이다. 튀르키예 북부 시노프 지역의 제2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을 두고 한국과 러시아, 중국, 캐나다 등이 경쟁 중이다. 이 대사는 한국을 매우 신뢰할 수 있고 경쟁력 있는 수주 잠재력을 가진 국가로 평가했다. 특히 러시아의 로사톰이 튀르키예 남부 메르신에서 첫 원전을 건설 중인 상황에서, 원전 공급망의 ‘진영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나 튀르키예는 지정학적 논리보다 에너지 안보를 위한 공급망 다변화와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재자로서의 외교 자산과 연결의 가치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쟁으로 국제적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 대사는 ‘연결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흑해를 사이에 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양측과의 관계를 온전히 유지하는 것이 튀르키예의 정체성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비편향적 소통 방식은 튀르키예가 국제 갈등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며 외교적 자산을 쌓아온 근간이 되었다.
이을드즈 대사는 외교 관계를 특정 진영으로 가를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며, 예측 불가능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