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대신 곡괭이 쥐고 전장을 누빈 여성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여성육군보조부대의 여성들은 전투와 밀접하게 연관된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경비 임무를 수행할 때조차 이들은 소총 대신 곡괭이 자루를 들어야 했다. 당시 사진 속에서 탐조등을 조작하던 여성들은 적기를 식별하고 탄도 궤적을 계산하는 핵심 역할을 맡았으나, 실제 발포는 이들의 계산을 바탕으로 남성 군인이 담당했다.

17세기 아프리카 중서부를 지배하던 포르투갈 세력은 은동고 왕국(현 앙골라)의 여왕 은징가를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적수로 꼽았다. 내분과 노예 시장의 경쟁, 식민 세력의 개입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던 혼란기 속에서 그는 40년 동안 최전방 군대를 지휘했다. 은징가는 전략과 전술, 통신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였으며 외교와 무기 활용에도 능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이 승리하자 유럽 사회는 그를 잔혹하고 방탕한 야만인으로 폄하했다. 이는 잔다르크의 승리를 신의 은총으로 치부하거나 그녀를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영국에서 복무하던 한 호주 여성 장교는 120명의 남성 병사와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정부 방침을 근거로 여자는 참전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그는 결국 내려야만 했다. 그가 2년간 공들여 훈련시킨 병사들의 자리에는 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남성 생도가 대신 배치되었다.

기록에서 삭제된 여성 전투 주체의 역사

국제정치학자이자 '여자들은 언제나 싸웠다'의 저자인 세라 퍼시는 용병, 민간군사기업, 해적 등 비전통적 전투 주체와 여성의 역할을 연구해 온 전문가다. 그는 여성이 전쟁이라는 시스템의 일부로서 전장의 씨줄과 날줄처럼 존재해 왔으며, 이들의 활약이 주체적인 선택이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퍼시는 왜 이들이 군인으로 기억되지 못했는지, 그리고 왜 공식적인 전투 영역에서 배제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군사사를 재구성한다.

16~17세기처럼 전쟁이 일상적이었던 시기의 전쟁 공동체나 15~18세기의 공성전은 여성들이 가장 빈번하게 참여했던 전장이었다. 이동하는 도시와 같았던 부대 내에서 여성들은 식량 보급과 간호를 담당하며 전투에 동참했다. 특히 도시 자체가 전장이 되는 공성전 상황에서 여성들은 직접 참호를 파고 성벽을 구축했으며, 목숨을 걸고 군수품을 운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역사적 기록 속에서 이들은 병사로 남지 못했다.

19세기 서구 사회에서는 군대의 의료 및 보급 체계가 전문화되고 국가 주도의 인력 배치가 이루어지면서 여성의 전장 진입로가 차단되었다. 1854년 크림전쟁 당시 시작된 나이팅게일의 간호 혁신은 여성의 역할을 규정짓는 계기가 되었으며, 같은 해 영국군 아내들이 공식적으로 남편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이 마지막 사례가 되었다. 이후 여성들에게는 가정에 헌신하는 여성성이 요구되었다.

제도적 배제와 '놋쇠 천장'의 장벽

1914년 이후에는 전방(war front)과 대비되는 후방(home front)이라는 개념이 정립되며 여성은 안전한 가정에 머물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전면적 양상은 인력 부족을 야기했고, 국가들은 여성을 동원하면서도 전투는 남성에게만 맡기는 '공식적 전투 배제'라는 묘안을 실행했다. 당시 참정권 운동과 맞물려 군 복무와 시민권이 연관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전문직 장벽을 넘으려 노력했다.

영국 항공수송지원단 소속의 한 여성은 기관총이 장착된 비행기를 조종하기도 했으나, 탄알이 들어있음에도 공이치기가 잠겨 있어 격발은 불가능했다고 회상했다. 총을 쏠 수는 없었지만 총에 맞을 수는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소련의 경우 여성 공군 전투 연대가 창설되어 적기를 격추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만 여성을 투입하고 그 공로를 은폐하거나 무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배제는 지속되었다. 1971년 미국 의대생 로버트 골드버그는 징병제가 남성에 대한 차별이라며 소송을 제기하고 여성의 기술력을 근거로 군의 개방을 주장했다. 그러나 10년 뒤 대법원은 여성이 전투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징병의 의미가 없다고 판결했다. 저자는 이를 군 내 지위와 권력의 문제로 보며, 단순한 유리 천장을 넘어선 '놋쇠 천장'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군 당국은 신체 능력이나 성폭력 위험, 조직 응집력 저하 등을 이유로 여성 배제를 정당화했으나 이는 논박되었다. 걸프전과 이라크전 등 전선이 모호해진 현대전이 시작되면서 여군이 포함된 부대가 파견되었고, 전투와 비전투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식적 배제 상태인 여군들은 훈장을 받으면 복귀해야 하는 모순에 직면했다. 이후 성폭력 이슈와 함께 북유럽, 미국(2012년), 영국(2018년) 등은 차례로 여성 전투 보직을 개방했다.

2024년 출간된 이 책은 우크라이나와 가자, 중동 전쟁 등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징병제 논란이 뜨거운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저자는 군의 퇴행적 배제 욕구와 군대 변화에 대한 불신 사이의 현실을 짚으며, 잊힌 여성들의 관점으로 전쟁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