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거래소 정조준한 북한 사이버 공작 부대

비트겟과 바이낸스 등 세계적인 가상자산 거래소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해킹 공격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그 배후로 북한의 사이버 공작 조직인 '트레이더트레이터(TraderTraitor)'가 강력하게 의심받고 있다. 북한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이버 공격의 피해 규모가 급격히 확대됨에 따라, 전 세계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보안 위협이 실질적인 위기로 부상하는 양상이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발생한 바이낸스 해킹 사건은 10개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지갑에서 총 63억 6,000만 달러(약 8조 5,351억 원) 규모의 자산이 탈취되는 초유의 사태를 낳았다. 이는 가상자산 업계 역사상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피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바이낸스 측은 지난 1일 오후 3시부터 출금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재개했으나, 이날 오전 0시 30분까지 약 36억 4,000만 달러(약 4조 8,500억 원)의 자금이 순유출되었다고 공지했다. 이는 바이낸스 전체 관리 자산(AUM)인 1,710억 달러(약 229조 원)의 2.1%에 달하는 수치다. 바이낸스는 이번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이용자 자산 보호 기금과 사내 유보금을 투입할 방침이다.

반복되는 공격 패턴과 라자루스 그룹의 기술력

이번 바이낸스 사태는 지난 9월 25일 비트겟에서 3억 8,750만 달러(약 5,716억 원) 규모의 해킹이 일어난 지 불과 한 달 만에 발생했다. 두 사건 모두 개인키가 직접 유출된 흔적은 없었으나, 공격자들이 서명 권한을 탈취한 뒤 거래소의 내부 출금 승인 절차를 기만하여 자금을 빼냈다는 공통된 수법을 보였다. 비트겟의 경우 공격 주체를 공식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자금 이동 경로와 지갑 주소가 라자루스(Lazarus) 그룹의 패턴과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그레이시 첸 비트겟 CEO는 온체인 서명과 공격자의 행동 양식을 근거로 이번 공격이 북한 연계 해커 그룹의 기술과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바이낸스 사건의 배후로 '트레이더트레이터'를 공식 지목했다. 2022년 정체가 드러난 이 조직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110호 연구소에 속한 금융 전문 사이버 공작 부대다. 체이널리시스의 분석에 따르면, 트레이더트레이터는 크립토코어, 시트린 슬리트, 템프 허밋 등과 함께 라자루스 그룹이라는 명칭 아래 활동하는 하위 조직 중 하나다. 특히 트레이더트레이터와 크립토코어는 2016~2017년경 등장하여 가상자산 탈취를 전문으로 수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과거 바이비트의 15억 달러 규모 해킹과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의 3억 800만 달러 탈취 사건에서도 배후로 지목된 바 있다.

정교해진 스피어피싱과 자동화된 자금 세탁

이들의 공격 방식은 매우 정교하다. 특정 대상을 겨냥해 악성코드를 심는 '스피어피싱'을 활용하는데, 과거에는 채용 담당자를 사칭해 개발자를 속이거나 콜드월렛 서비스 업체인 긴코(Ginkgo) 및 다중서명 지갑 업체 세이프(Safe)의 직원을 표적으로 삼았다. 바이낸스 해킹 당시에도 공격자들은 자금 동결을 피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를 탈취한 뒤, 발행사가 통제하기 어려운 이더리움(ETH)으로 교환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체이널리시스는 최근 나타난 자금 세탁 방식의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공격자들이 프로그램에 의한 자동화 기술을 도입하여, 짧은 시간 동안 수천 건의 거래를 일으키며 자금을 여러 주소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순환시키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동화된 이동은 자금의 경로를 은폐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국내 거래소 및 금융당국의 긴급 대응

바이낸스 사태의 여파로 국내 가상자산 시장도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업비트와 빗썸 등 국내 주요 거래소들은 바이낸스로 향하는 자산 출금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며, 이용자 보호를 위해 필요 시 바이낸스로의 출금을 제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위원회 역시 긴급 보안 점검 회의를 열고 거래소들의 전산 시스템 접근 통제 및 관리자 권한 관리 현황을 면밀히 점검했다. 금융당국은 콜드월렛 비중 확대, 입출금 상시 모니터링 강화, 비정상 접근 시 신속한 보고 체계 구축, 그리고 준비금 추가 적립 등을 통해 즉각적인 보안 강화 조치를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관계기관 및 업계와 협력하여 추가적인 침해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대응 체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