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입력에서 직관적 제어로의 전환
대학 시절 수강했던 전공 필수 교과목 중 유독 선명한 기억을 남긴 수업이 있다. 구체적인 강의 내용은 희미해졌을지 모르나, 당시의 풍경만큼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창문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실내에 늘어선 퍼스널 컴퓨터(PC)들, 플로피 디스크를 삽입한 뒤 전원을 켤 때 들려오던 특유의 기계음, 그리고 파란색 스크린 위로 한 줄씩 출력되던 텍스트들이 그것이다. 컴퓨터와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던 순간은 매우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제대 후 복학했을 때 마주한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별도의 명령어를 입력하지 않아도 마우스 조작만으로 프로그램이 구동되고, 전화선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광경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간의 문자와 컴퓨터의 언어를 매개하는 핵심 도구는 키보드와 마우스다. 키보드는 숫자와 문자, 각종 기호를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디지털 및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지식과 문장, 생각들은 키보드를 통해 입력됨으로써 저장과 검색, 복제와 전송이 자유로운 영역으로 들어섰다. 마우스는 인간의 행동과 시각 정보를 컴퓨터에 전달하는 통로가 되었다. 이 두 장치는 정보의 대중화와 생각의 디지털화를 실현했으며, 명령 체계를 클릭 기반으로 바꾸고 문자 중심에서 시각 정보 중심으로의 확장을 이끌어냈다.
AI 시대의 새로운 입력 도구 '코덱스 마이크로'
이제 컴퓨터와 AI를 사용하는 방식에 또 다른 변혁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 31일, 한국을 깜짝 방문한 오픈AI의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은 삼성 사장단에게 '코덱스 마이크로(codex micro)'라는 소형 입력장치를 전달했다. 올트먼은 AI를 활용하고 말로 명령을 내리는 세상에서는 기존의 커다란 키보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철학을 이 장치에 담았다고 밝혔다. 230달러의 가격표가 붙은 이 기기는 13개의 기계식 스위치를 비롯해 조이스틱과 회전식 다이얼을 탑재하고 있다. 이는 코딩을 수행하는 AI 에이전트인 '코덱스'를 사용하는 데 최적화된 전용 도구다.
코덱스 마이크로는 컴퓨터와 AI를 다루는 방식이 단순한 문자 입력을 넘어, 구두 지시를 통해 결과를 확인하고 이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인공지능 시대에 사용자의 질문 능력과 판단력, 그리고 사고력이 더욱 핵심적인 가치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에게는 '아날로그 리터러시(analogue literacy)'가 더욱 중요해지는 셈이다. 밤이 깊어가는 계절을 맞아, 다시금 책을 가까이하며 사유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