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 구조 없는 뇌가 보여준 '증거 축적'의 놀라움

판단의 근원이 반드시 대뇌피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생물학에서는 주름진 회색 껍질과 6층 구조의 신경세포, 그리고 전전두엽이 있는 인간이나 원숭이의 뇌를 판단의 핵심으로 간주해 왔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피질이 없는 생물들도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초파리 연구실에서 관찰되는 파리의 망설임 속에는 까마귀의 235밀리초 반응과 원숭이의 느린 고민이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최근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까마귀 관련 연구는 이러한 통념에 큰 충격을 주었다. 피질이 존재하지 않는 새가 오히려 원숭이의 고전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속도가 두 배나 빨랐기 때문이다. 이는 뇌의 형태가 다르더라도 판단을 내리는 알고리즘은 유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진화신경과학자 바버라 핀레이의 관점을 빌리자면, 뇌의 구조는 단순한 '적응'의 결과가 아니라 '발생의 시간표'에 따른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

까마귀와 파리, 서로 다른 하드웨어 속 동일한 알고리즘

원숭이의 의사결정 연구에서 흔히 쓰이는 표준 과제는 화면 속 점들의 흐름을 파악해 방향을 맞추는 것이다. 점들의 움직임이 불분명할수록 난도는 높아지는데, 신경과학자들은 뉴런이 증거를 조금씩 쌓아 올리다 특정 문턱에 도달할 때 행동이 나타난다는 점을 밝혀냈다. 독일 튜빙겐 대학교의 안드레아스 니더 교수팀은 송장까마귀를 대상으로 이와 유사한 실험을 진행했다. 까마귀는 흐름과 일치하는 화면을 쪼아 밀웜을 얻었으며, 평균 235밀리초 만에 정답을 맞히는 놀라운 속도와 74%의 정확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까마귀의 뇌 신호는 자극 발생 70밀리초 만에 결정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빨랐다. 비록 까마귀의 뇌에는 포유류와 같은 6층 구조의 신피질이 없고, 대신 '핵' 형태의 세포 덩어리로 이루어진 대뇌 외투를 가지고 있지만, 기능적으로는 영장류의 전전두엽에 대응하는 '꼬리쪽 외측 니도팔리움'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서로 다른 하드웨어 위에서 같은 프로그램이 구동되는 것과 같다. 니더 교수는 뇌의 작은 크기, 높은 뉴런 밀도, 그리고 높은 체온 등이 이러한 빠른 판단을 가능케 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러한 '증거 축적' 모델은 초파리에게서도 발견된다. 2014년 게로 미센뷰크 연구실의 샤미크 다스굽타 등은 파리가 두 가지 냄새 농도 사이에서 선택할 때, 농도 차이가 작을수록 더 오래 고민하고 오답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보고했다. 이는 영장류에서 나타나는 속도와 정확도의 상관관계와 일치한다. 유전적 결함이 있는 파리는 판단 과정이 더욱 지체되었는데, 연구팀은 약 200개의 뉴런 무리가 이 과정에 관여함을 확인했다.

진화의 설계도와 생물학적 낭만

까마귀의 빠른 판단이 생존을 위한 최적의 적응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바버라 핀레이는 진화가 특정 능력을 위해 영역을 개별적으로 키우기보다, 발생 과정의 시간표 안에서 뇌 전체를 함께 키웠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즉, 까마귀의 빠른 속도는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결과라기보다, 비행을 위해 가벼워진 뇌 구조가 가져다준 부수적인 효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원숭이의 두정엽, 까마귀의 니도팔리움, 그리고 파리의 신경계는 하드웨어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증거를 모아 문턱을 넘는다'는 동일한 계산법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판단 능력이 특정 피질 구조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며, 인간을 생물학적 사다리의 정점에 두려는 오만한 사고를 경계하게 한다. 다양한 종의 발생 사건을 하나의 시간 축으로 연결하려 했던 핀레이의 유산처럼, 서로 다른 생명체가 같은 문제에 각자의 방식으로 답해온 과정은 생물학이 가진 진정한 낭만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