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이익을 위해 무너지는 공공선의 가치

정부와 여당이 320여 개의 규제 완화 조치를 포함한 초광역특구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는 노동 관련 특례가 포함되어 있어, 오랜 기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구축해 온 공공의 가치를 사기업의 요구에 따라 해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메가특구 모델이 과연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는 이번 연재를 통해 현재 메가특구에 필요한 제도의 본질을 짚어본다.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이 1963년 노동절을 기념해 집필한 <조금 덜 일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에는 흥미로운 대조가 등장한다. 항구에서 만난 어부는 이미 충분한 양의 고기를 잡았기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관광객은 배를 늘리고 공장과 냉동창고를 세우면 나중에 편히 쉴 수 있다며 더 많은 노동을 독려한다. 이에 어부는 자신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고 답한다. 이 우화는 오늘날 노동시간에 대한 논의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노동시간 규제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은 쟁취를 위해 투쟁해 왔으며,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첫 협약을 통해 산업 부문 근로시간을 주 48시간, 하루 8시간으로 제한한 배경에는 생산성 향상이나 연장근로 수당 이상의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한 인간이 생계를 위해 임금을 벌기 위해 할애하는 시간에 반드시 종지부가 찍혀야 한다는 요구다. 임금이 노동의 대가는 될 수 있을지언정 노동에 투입된 삶의 시간 자체를 돌려줄 수는 없으며, 장시간 노동으로 망가진 건강은 사후적인 보상만으로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시간 규제는 경제적 성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노동이 인간의 전 생애를 잠식하지 못하도록 설정한 최후의 방어선이다.

물n론 업무의 일시적 집중이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유연한 시간 배분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근로시간의 총량을 늘리는 것과 배분을 유연하게 하는 것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을 두고도 주 12시간의 연장근로를 관행처럼 여기거나,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업종별 특례나 특별연장근로로 돌파하려 한다면 원칙과 예외의 경계는 무너진다. 유연성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도리어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면, 인력 충원이나 업무 방식의 개선은 지연되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건강과 시간으로 전가된다.

메가특구 근로시간 특례의 위험성

최근 메가특구와 관련해 논의되는 근로시간 특례는 이러한 위기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첨단산업 육성과 지역 투자 유치를 명분으로 특정 지역 내 연구개발 인력이나 고소득 관리자들에게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허용하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연구개발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한 유연성은 인정될 수 있으나, 이것이 근로시간 상한선 자체를 낮추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높은 급여나 전문성이 근로시간에 대한 실질적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며, 근무 지역에 따라 노동 보호 수준이 차등 적용되는 것 역시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특히 연구개발 인력이 업무 시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이라 하더라도, 실제 개발 일정과 성과평가, 납기를 결정하는 주체는 여전히 기업인 경우가 많다. 이는 개인의 선택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다. 만약 특정 지역의 특례가 다른 지역이나 산업군으로 확산된다면 근로시간 규제의 보편적 기준 자체가 흔들릴 위험이 크다. 첨단산업 지원은 기술개발 지원이나 인력 양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투자 유치를 위해 근로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기업의 이익을 노동자의 희생으로 충당하는 꼴이다. 산업정책이 노동 보호의 기준을 퇴보시키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인리히 뵐의 이야기 속 관광객은 노동 뒤에 찾아올 보상을 약속하지만, 어부는 이미 현재의 삶 속에서 그 보상을 누리고 있다. 오늘날의 노동시간 논의에서도 이 지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더 많이 일한 뒤에야 비로소 누리는 삶과, 일하는 과정 중에도 함께 누려야 하는 삶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노동시간을 제한해 온 역사는 노동이 끝난 미래만큼이나 노동하는 현재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온 과정이다. 산업 발전을 명목으로 노동시간을 다시 늘리려는 시도 앞에서, 우리가 그동안 노동의 한계를 정해온 이유를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