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처럼 만지는 맥북 프로의 등장
영상 편집 작업 중 새로운 클립을 삽입해야 할 때, 마우스나 트랙패드 대신 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원하는 위치로 끌어다 놓는 조작이 가능해졌다. 애플의 고사양 노트북인 맥북 프로에서 구현되는 이 방식은 마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다루는 듯한 직관성을 제공한다. 손가락 끝으로 영상 클립의 길이를 조절하거나, 두 손가락을 벌리고 오므리는 동작을 통해 편집 구간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도 있다. 태블릿 PC의 사용성을 노트북에 그대로 이식한 셈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변화는 현지 시각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애플의 신제품 공개 행사 ‘프로 앤 텔(Pro and Tell)’에서 확인됐다. 애플은 자사 최초로 터치스크린 기능을 갖춘 14인치 및 16인치 맥북 프로를 선보였다. 이는 지난 10여 년간 고수해 온 애플의 제품 철학이 뒤집힌 결과다. 경쟁사들이 터치 기능을 노트북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 가운데,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요구를 수용해 더 이상 터치 기술을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창작자를 위한 직관적 조작과 AI의 결합
이번 신제품의 핵심은 화면 직접 조작을 통한 작업 편의성 증대다. 웹페이지를 넘기거나 사진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손으로 직접 배치할 수 있다. 특히 디자이너는 화면을 캔버스로 활용해 그림을 그리고, 음악가는 가상 악기를 화면에서 직접 연주하는 등 전문 창작자들의 작업 효율이 극대화됐다. 기존의 키보드와 트랙패드 활용도 병행할 수 있어 작업 성격에 따른 자유로운 조작 방식 선택이 가능하다.
인공지능(AI)과의 연결성도 강화됐다. 화면 상단에는 아이폰의 ‘다이내믹 아일랜드(Dynamic Island)’가 적용되어, 작업 중 터치 한 번으로 AI 비서인 ‘시리 AI’를 즉시 호출할 수 있다. 별도의 앱 실행 없이도 시리는 사용자의 작업 맥락을 파악해 이메일이나 문서 내 정보를 찾아주는 등 복합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이를 위해 애플은 터치 센서를 디스플레이 패널 내부에 통합해 반응 속도를 높였으며, 화면 흔들림을 방지하고자 힌지 구조를 개선하고 맥OS의 인터페이스도 터치 친화적으로 재설계했다.
압도적 디스플레이와 강력한 하드웨어 성능
디스플레이 사양도 대폭 업그레이드됐다. 맥북 최초로 탠덤 OLED 기술을 적용한 ‘프로레드 XDR(PROLED XDR)’ 디스플레이가 탑재됐다. 이 패널은 최대 2000니트의 밝기와 1000만 대 1의 명암비를 자랑하며, 120㎐의 가변 주사율을 지원한다. 색상 정확도가 필수적인 전문가들을 위해 P3와 어도비 RGB 색 영역을 모두 지원하는 것도 특징이다. 하드웨어 성능 면에서는 M5 프로 및 M5 맥스 칩을 기반으로 최대 128GB 메모리와 16TB 저장 공간을 제공하며, 배터리는 최장 24시간 동안 지속된다. 무게는 14인치 기준 약 1.36㎏, 16인치 모델은 약 1.81㎏으로 기존보다 가벼워졌다.
애플의 오랜 금기를 깨뜨린 전략적 배경
애플이 터치스크린을 도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과거 스티브 잡스 CEO는 화면을 터치할 때 발생하는 팔의 피로도를 이유로 부정적 견해를 보였고, 팀 쿡 전 CEO 역시 태블릿과 PC의 결합을 비현실적인 비유로 일축했었다. ‘돼지가 하늘을 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불가능해 보였던 변화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팀 쿡 전 CEO는 4년 전부터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개발을 승인했으며, 존 터너스 현 CEO 또한 터치 기능이 노트북의 기본 사양이 되었다고 판단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AI 시대에 화면을 통한 상호작용이 중요해진 점도 결정적 요인이 됐다.
가격은 미국 기준 14인치 M5 프로 모델이 2899달러, 16인치 모델이 3399달러부터 시작하며, 이는 기존 비터치 모델보다 약 400달러 높다. 제품은 이날부터 예약 주문을 시작해 다음 달 6일 본격 판매에 들어간다.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AI 생태계
애플은 최근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 출시와 M6 칩 탑재 제품 공개 등 하드웨어 라인업을 전방위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이는 하드웨어 엔지니어 출신인 존 터너스 CEO의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아이폰을 단순한 기기를 넘어 지능형 개인 허브로 정의하며, 기기 내부와 클라우드 AI를 결합한 이상적인 AI 기기를 지향하고 있다. 애플은 자체 기술 개발과 더불어 구글의 제미나이(Gemini)와 같은 외부 고성능 모델을 활용해 시리의 기능을 강화하는 등, 강력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AI 경험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