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반출과 시위의 마무리

이태한 특별검사팀이 29일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묶여 있던 6·3 지방선거 서울 송파구 투표용지들을 공개검증한 뒤 외부로 반출하면서, 147일 동안 지속된 이른바 ‘올공 시위’가 해산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 6월 5일부터 시작된 이 시위는 당초 선거 부실을 규탄하던 청년층의 정치적 목소리로 주목받았으나, 점차 음모론적 담론과 기성 정치 세력이 유입되며 부정선거론자들의 거점으로 변질된 끝에 막을 내리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검증을 마친 투표용지 247만 장을 수도권의 한 창고로 옮겼다. 전체 420여 개의 투표용지 상자 중 특검팀의 확인을 거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 물량들이 이송된 것이다. 다만 참관인의 이의 제기가 있었던 13개 상자는 이번 이송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특검팀은 이들을 별도로 옮겨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 정밀 감정을 맡길 방침이다.

변질된 시위 현장과 참여자들의 이탈

투표용지 반출이 진행됨에 따라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투표함이 이동된 직후부터 시작된 올림픽공원 점거 농성도 끝날 기색이다. 전날까지 1,000명 이상의 인파가 몰렸던 현장에는 이날 20~30명 정도의 인원만이 남아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부정선거 재선거를 외치거나 선관위와 특검을 향해 울분을 토했다. 유튜버로 활동 중인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는 현장을 지켜야 할 명분이 사라졌다고 언급하며, 향후 국회의사당이나 청와대, 선관위 앞에서 부정선거 척결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히며 떠났다.

본래 이 시위는 6·3 지방선거 당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 비롯되었다. 초기에는 선거 절차의 하자를 지적하는 20~30대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기존의 '아스팔트 보수'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당시 현장에서는 성조기 사용이나 '부정선거'라는 구호 대신 태극기만을 활용해 '재선거'를 요구하자는 자제령이 돌기도 했다. 이는 참정권 보호라는 본래 취지에 집중해 외연을 넓히려는 의도였다. 이 시기는 가족 단위 참가자나 연인들이 함께하는 평화로운 정치적 공간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극우 담론의 침투와 사회적 후유증

초기 참여자들은 특정 정치 세력에 귀속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며 '올공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들은 참정권 침해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다양한 세대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김종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초기에 선거 시스템의 문제를 건강하게 공론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집회가 길어지며 보수단체와 정치인, 유튜버들이 유입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재선거'라는 구호는 '윤 어게인'이나 '부정선거' 같은 극우적 코드로 바뀌었고, 경찰을 향한 폭력 사건도 빈번해졌다.

장기간의 경기장 봉쇄는 체육계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대한핸드볼협회와 대한펜싱협회를 포함한 9개 종목 단체는 사무실 출입이 막혀 급여 지급과 국가대표 수당 관리, 대회 준비 등에 막대한 차질을 겪었다. 결국 이들은 지난 9월 8일 경찰의 도움을 받아 전산 장비 등을 회수할 수 있었다. 사회적 피로도가 높아지며 인원은 급감했고, 특검팀의 검증이 시작된 28일에는 참가자가 200명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이번 사태가 남긴 상흔은 깊다. 지난 7월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18~29세 청년층의 53%가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답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불신을 보였다. 이는 청년층의 선거 시스템 신뢰가 무너졌음을 시사한다. 김종우 교수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단순한 처벌을 넘어 선관위의 감사 체계 개편과 제도적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