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 뒤에 숨은 노동 환경의 불확실성
정부와 여당이 노동 특례를 포함해 약 320여 개의 규제 완화책을 담은 초광역특구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오랜 기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구축해 온 공공의 가치를 사기업의 요구에 따라 해체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메가특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현재의 제도 설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첨단 산업의 성장과 고용 창출이라는 명분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 일자리가 불규칙한 근무와 장시간 노동을 전제로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메가특구 논의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핵심 질문은 해당 일자리가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지, 그리고 남녀 모두가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지 여부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초광역특구법안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고소득 관리자나 전문직, 연구직 인력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를 다르게 적용하는 특례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 기간을 최대 6개월까지 연장하고,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담겼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전략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노동 시간의 불안정성과 고용 불안을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제 기준과 '탐욕스러운 일자리'의 위험성
국제노동기구(ILO)는 예측 불가능하고 반사회적인 노동 형태가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번아웃과 이직을 유발한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기업의 생산성 향상뿐 아니라 노동자의 휴식권과 일·생활 균형을 보장하는 노동 정책이 필수적이다. 특히 ILO는 노동 시간 정책이 성평등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남녀 모두가 일과 돌봄을 조화롭게 수행할 수 있도록 근무 시간을 편성할 것을 권고한다. ILO 권고 165호에 따르면, 국가는 일일 근로 시간과 초과 근무를 점진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휴식과 휴일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때의 유연성은 수요에 따라 노동 시간을 무분별하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을 고려해 일과 가족 돌봄을 지원하는 원칙을 의미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은 저서 <커리어와 가족>을 통해, 언제든 업무 호출에 응답하며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더 큰 보상을 주는 직업을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이라 정의했다. 이러한 일자리는 보상과 승진을 단순히 투입된 시간과 결부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돌봄 책임이 여성에게 편중된 사회 구조에서 이러한 직종을 유지하며 일과 돌봄을 병행하기는 매우 어렵다. 결국 남성은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머물고, 여성은 상대적으로 유연하지만 임금과 경력 측면에서 불이익이 큰 직종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골딘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상시 대기나 장시간 투입에 집중된 보상 구조를 개편하고, 근무 시간을 조정하더라도 경력에 타격이 없도록 업무 체계를 재설계할 것을 제안한다.
성별 불평등과 지속 가능한 산업 정책
메가특구의 설계가 성별에 미칠 영향 또한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만약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근무가 특구의 성과를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면, 일과 돌봄의 양립이 어려운 여성들은 진입 단계부터 높은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채용 과정의 성별 편견은 물론, 입직 후 육아나 가족 돌봄을 위해 근무 시간을 조정하거나 휴직을 사용할 경우 핵심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승진이 지연될 위험이 크다. 남성 역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문화 속에서는 돌봄에 참여하기 어렵다. 메가특구가 '탐욕스러운' 일자리만을 양산한다면, 돌봄의 책임은 여성에게만 전가되어 독박 육아와 경력 단절로 이어질 것이며 성평등은 실현될 수 없다.
첨단 산업의 경쟁력은 노동자의 삶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는 확보될 수 없다. 기업의 혁신 요구를 충족하면서도, 더 짧고 효율적이며 유연한 노동 시간 편성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메가특구가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고 남녀 모두의 일·생활 균형을 보장하려면, 장시간 노동을 경쟁력의 도구로 삼는 대신 예측 가능한 노동 시간, 충분한 휴식, 돌봄에 따른 불이익 방지, 그리고 안정적인 고용을 산업 정책의 핵심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확장하는 공간이 아닌, 노동자의 삶과 함께 성장하는 공간으로서의 특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