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더미서 발견된 미라화 주검의 정체
서울 구로구의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미라처럼 변한 채 발견된 시신의 신원이 50대 미등록 이주민 남성으로 밝혀졌다. 중국 국적을 가진 이 남성은 생전 심각한 지병으로 인해 중환자실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회적 돌봄이나 제도적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행정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위기 상황의 미등록 이주민들이 직면한 참혹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고범석 서울경찰청장은 2일 열린 정례기자간담회에서 해당 시신의 주인공이 중국 출신의 50대 남성 ㄱ씨임을 공식 확인했다. 경찰은 지난달 27일 환경미화원의 신고를 접수해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며, 현재 사체유기를 지시하고 실행한 혐의를 받는 80대 남성 ㄴ씨와 60대 남성 ㄷ씨를 대상으로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인 15년의 한국 생활
조사 결과에 따르면 ㄱ씨는 지난 2011년 한국 땅을 밟은 이후 2022년 체류 허가 기간이 종료되면서 미등록 상태로 생활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지난 8월 15일부터 31일까지 지병 악화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나, 병원비를 결제하지 못한 상태로 퇴원해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입원 당시 보호자 명단에는 중국인 동거인이 기재되어 있었으나, 해당 인물은 사망 당시 이미 출국한 상태였기에 사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에서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ㄱ씨의 죽음은 유기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고인이 숨진 뒤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방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의 근본 원인으로는 행정 체계상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취급되는 미등록 이주민의 신분이 지목된다. 중환자실 치료비조차 감당할 수 없었던 극한의 상황에서도 정부 차원의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제 ㄱ씨의 거주지 관할 주민센터 관계자는 미등록 외국인에 대한 지원 근거와 행정적 여력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립된 주거 환경과 공적 지원의 부재
ㄱ씨가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구로구 쪽방촌의 열악한 관리 실태 또한 고립을 심화시킨 요인으로 분석된다. 동자동이나 영등포역 인근의 쪽방촌과 비교했을 때, 구로구 지역은 쪽방상담소 등의 지원 체계가 부족해 관리가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2019년 한국도시연구소가 실시한 구로구 비주택 거주민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해당 지역 주거취약계층의 60% 이상이 가족이나 친척과 교류가 없는 고립 상태였다. ㄱ씨 역시 국내에 연고가 없거나 지인이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호 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은 응급 상황에 직면한 미등록 체류자들을 위한 복지 체계가 사실상 공백 상태이며, 현재는 시민사회의 도움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기에 처한 이주민들에 대해 최소한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공적 영역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