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쏟아낸 장황한 메일, 소통의 장애물로 전락

최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작성된 이메일을 읽는 과정이 커다란 피로감을 주고 있다. 특히 강의 제안이나 기고 요청을 담은 메일들이 예전보다 눈에 띄게 길어지는 추세다. 불과 세 줄이면 충분할 내용을 서른 줄에 달하는 장문으로 늘려 쓰는 식이다. 이로 인해 메일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드는 시간이 답장을 쓰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요점이 모호한 메일들은 읽기를 미루게 되며, 나중에 다시 확인하더라도 불분명한 핵심 때문에 회신을 지연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메일을 보내는 이들은 짧은 용건보다 AI를 이용해 길게 늘여 쓴 글이 더 정중하고 진정성 있다고 믿을지 모른다. 하지만 AI가 생성한 장황한 문구들 사이를 헤매다 보면 과연 이것이 최선의 방식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오히려 문장이 다소 투박하더라도 진실한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나, 핵심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감동마저 의심하게 만드는 'AI 소통'의 세태

최근 진행된 한 북토크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공감이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문자나 카카오톡, 이메일 작성 시 AI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해 받는 사람 역시 AI로 요약과 답장을 시키는 'AI 간의 대화'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 참석자는 조카가 용돈을 받은 뒤 보낸 장문의 감사 문자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 눈물까지 날 뻔했으나, 그것이 AI로 작성된 글임을 알게 된 후 허탈함을 느꼈다는 사례를 공유했다. 이제 수신자는 타인의 감동적인 메시지조차 의심하며 자신의 감정마저 경계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문제는 각종 공모전 심사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몇 년 전과 비교해 에세이 공모전 등의 응모작 수준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문법적 오류나 비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모든 응모작이 유사한 문체와 비유, 구성과 완성도를 갖추게 되면서, 수많은 작품 중 무엇이 진정으로 탁월한지를 가려내는 작업이 매우 고된 일이 되어버렸다.

글쓰기의 본질과 인간 고유의 목소리 회복

그렇다면 진정으로 좋은 글과 이메일, 메시지의 기준은 무엇일까. 필자는 최근 불필요한 수사를 최대한 배제하려 노력 중이다. AI가 만들어낸 과도한 수사법과 비유, 은유, 대구법 등이 난무하며 알맹이 없는 장황한 글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세상에 쏟아내는 방대한 양의 무의미한 텍스트는 오히려 인간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은 저서 '읽지 않는 사람들'(웅진지식하우스)을 통해, 읽기와 쓰기 과정 모두에서 AI를 활용할 경우 스스로의 고유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내면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AI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시대이지만, 과도한 의존으로 인해 자신의 생각과 언어, 이야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쓰기의 본질은 결국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며,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행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