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연결된 가족의 풍경

사랑하는 이들과는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정작 곁에 있는 이들이 가장 생경하게 느껴지는 세상이 있다. 우리 가족에게는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초기에 영국으로 이주했을 당시에는 전화 한 통을 나누는 것조차 생일잔치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루에도 수차례 화면을 통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가을이 수차례 지나가고 겨울의 눈이 깊게 쌓일 때까지, 우리의 이 관계가 여전히 멀리서도 굳건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본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이상헌은 삭막하고 거칠었던 유엔 총회 일정을 마치고 제네바로 귀환하자마자 고속도로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는 아내가 친동생처럼 아끼는 이의 결혼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스위스인 배우자를 만나 사랑을 키워온 그들은, 우리 부부와 비슷한 연배를 지나 어느덧 중년의 문턱에 들어서 있었다. 늦은 시기에 만나 가을볕처럼 사랑을 키워온 만큼, 가을에 식을 올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로 전한 축사와 화살의 비유

축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는 대신, 그는 짧은 시 한 편을 써 내려갔다. 말을 하는 것도, 길게 글을 쓰는 것도 모두 버거운 일이었기에 오로지 짧다는 이유로 시를 썼지만, 이는 오히려 시를 욕되게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낭독하는 것조차 어색해 아내가 대신 시를 읽어 내려갔다. 시의 제목은 ‘가을에도 꽃은 핀다’였다. 모든 꽃이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가을에 피는 꽃 역시 제철을 맞이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늦게 피어난 꽃의 환한 모습 때문이었을까. 하객들은 누군가는 손수건을 꺼내 들었고, 누군가는 울다가 웃으며 식을 지켜보았다.

결혼식이 끝난 뒤 돌아오는 길은 다시금 멀게 느껴졌다. 그는 한국에 있는 딸을 떠올렸다. 딸 또한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딸은 한국에 머물고 있으며, 부모인 우리는 여전히 제네바 인근에 거주 중이다. 스위스에서 온전히 성장한 딸은 홀로 한국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한국인 남성을 만났다. 한국 시골 출신의 부모는 타국에 살고 있으며, 한국에서의 삶을 원치 않아 국적 변경까지 고려했던 스위스인 딸은 이제 한국에서 가정을 꾸린다.

칼릴 지브란은 아이를 살아있는 화살로, 부모를 활로 비유하며 아이들을 멀리 쏘아 보내는 존재로 정의했다. 부모는 온 힘을 다해 화살을 쏘되, 날아가는 화살을 붙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활을 잡은 자가 날아가는 화살을 애타게 바라보는 것은 숙명적이다. 지브란은 이러한 안타까움이 만들어내는 가족사의 복잡함을 미처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평생 미혼으로 살며 자녀를 두지 않았던 그의 통찰은 역설적으로 명징했다.

30년의 타국 생활과 가족의 생존

그의 가족에게 화살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딸은 활이 당겨지기도 전에 스스로 날아갔고, 부모는 그 뒤를 뒤쫓았다. 딸이 태어난 직후 건강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한국에서는 앞날이 어둡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들려왔다. 부족한 자금과 정보 속에서도 그들은 길을 찾기 위해 영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영국의 병원에서 들은 진단은 뜻밖이었다.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는 말은 기가 막히면서도 기쁜 ‘최악의 오진’이었다. 병원 밖으로 나온 부부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이는 그들이 긴 결혼 생활과 생존을 함께해 온 것을 축하하며 쓴 책에도 기록된 일화다.

딸을 위해 시작한 외국 생활은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로 이어졌다. 영국에서의 학업을 마치고 제네바로 온 뒤, 귀국 날짜를 정하지 않은 채 지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한국에 가고 싶을 때마다 아내에게 물으면 늘 “그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내는 가족이 함께라면 어디든 고향이라 믿었지만, 몸은 타국에 있어도 마음 한편은 늘 한국을 향해 있던 그는 아내와 달랐다.

멀리서 사랑하기, 그 마음의 풍경

귀국할 기회가 생겨 아이들의 의견을 물었을 때, 딸과 아들은 이구동성으로 반대했다. 제네바가 자신들의 고향이자 친구들이 있는 곳이라며 거부한 것이다. 결국 한국행을 포기하게 된 상황은 그에게 일종의 ‘가족 민주주의’로 다가왔다. 이는 화살이 잘 날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곁에 있다고 해서 그들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딸이 전시회에서 보여준 피 낭자한 그림은 한국에서 증조외할머니의 죽음을 접한 뒤의 심경을 담은 것이었다. 가까이 있었기에 오히려 보이지 않았던 딸의 내면이 있었다.

이제 딸은 부모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을 경험하며 스스로 길을 찾아갔다. 그는 최근 들어 딸 때문에 외국에 나왔다는 말이 사실은 ‘덕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쓴 ‘디스턴트 러브(Distant Love)’처럼, 세계화는 사람들을 국경 너머로 흩어놓았다. 그는 ‘장거리 사랑’이라는 번역보다 ‘멀리서 사랑하기’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장거리’가 물리적 수치라면, ‘멀리서’는 그 거리 너머의 마음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딸의 결혼 소식을 접하며 사람들은 귀국 시점을 묻지만, 그 답은 알 수 없다. 딸이 돌아간 한국과 그가 꿈꾸던 한국은 결코 같은 공간일 수 없기 때문이다. 딸이라는 화살이 이번에는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지, 그리고 다가올 겨울에도 우리는 멀리서 굳건할 수 있을지 기대와 의문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