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프라의 병목 현상과 새로운 투자 시대
인공지능(AI) 산업을 둘러싼 폭발적인 성장 기대감과 막대한 투자 비용에 따른 과잉 투자 우려가 맞물리며 미국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 26일 앤스로픽이 상장을 추진하며 보여준 급격한 매출 성장세는 관련 기업들의 주가를 끌어올리는 동력이 되었으나, 28일에는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의 주가가 시간 외 거래에서 약 10%가량 급락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분야에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자본이 실제 수익성으로 직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반영된 결과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드웨어 분야에 11억 달러(약 1조 5000억 원) 규모의 '머신 에이지(기계의 시대) 펀드'를 조성한 라구 라구람 매니징 파트너는 한국을 직접 방문해 새로운 투자처를 모색했다.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사람들이 기술의 진보 속도는 낮게 평가하면서도 실제 사회에 도입되는 속도는 지나치게 높게 잡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AI를 과거 클라우드 서비스가 기업용 소프트웨어에 미친 변화를 넘어, 마치 전기가 등장했을 때처럼 거의 모든 산업 영역을 재편할 근본적인 변화로 정의했다.
인프라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적 투자 원칙
라구람 파트너는 과거 전기 모터가 초기에는 산업 현장에 국한되었으나 이후 가전제품 전반으로 확산되었듯, AI 역시 예상치 못한 다양한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직 대다수의 인류가 AI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발생할 수요는 매우 클 것이라는 설명이다. '머신 에이지'라는 펀드 명칭에는 증기 기관이나 인터넷이 문명을 바꿨듯 AI가 인간과 기계의 협업 방식을 혁신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에 따라 칩, 메모리, 네트워크,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전반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
현재 펀드 조성의 배경에는 모델 개발사들이 연산 자원 부족을 호소하는 동시에, 창업자들이 이를 해결할 신기술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 있다. 그는 단순한 시설 확충을 넘어 전력 효율을 개선하고 컴퓨팅 성능을 극대화할 기술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는 투자 전략을 가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산 성능이 올라가면 네트워크가, 데이터량이 늘어나면 메모리가 병목 지점이 되는 현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인프라 전체의 흐름을 보고 투자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의 제조 역량과 차세대 기술에 주목
투자 결정의 최우선 기준은 창업자의 역량이다. 라구람 파트너는 하드웨어 창업자가 기술적 전문성은 물론, 글로벌 공급망 대기업과 협상할 수 있는 능력과 구체적인 고객 확보 계획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기존 시스템을 대체하려면 기존보다 10~20% 개선되는 수준이 아니라, 3배 이상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증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의 메모리 산업과 제조업 경쟁력을 높게 평가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엔비디아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중요한 기업으로 꼽았다. AI 시대에 메모리의 중요성이 급격히 커졌기 때문이다. 비록 삼성전자의 주가가 변동성을 보일지라도 이들이 창출하는 장기적 가치는 막대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또한 한국이 보유한 대규모 생산 능력과 서구권 공급망과의 긴밀한 관계는 중국의 추격 속에서도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나아가 그는 한국의 우수한 기술 인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차세대 메모리 기술이나 전자제품 제조에 활용될 로봇 기술이 한국에서 탄생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라구람 파트너는 인터뷰 전날에도 한국 기업 4~5곳을 면담했으며, 일부 투자 조직을 통해 스타트업들과 접촉하며 실질적인 투자 기회를 탐색 중이라고 밝혔다. AI가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끌고 있다는 확신 아래, 그는 기술 혁신이 가져올 새로운 시대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