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넘어 자산 직접 탈취하는 해킹 기승

국내외 가상자산 거래소를 대상으로 한 해킹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가상자산 거래 환경의 안전성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다. 국내 코인마켓거래소인 프라뱅에서 실질적인 자산 피해가 확인된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바이낸스에서는 역대급인 63억 달러(약 8조 4,000억 원) 규모의 자산 탈취 사건이 벌어졌다. 기존의 금융권 해킹이 주로 고객의 개인정보를 빼내는 데 집중했다면, 최근의 가상자산 업계 공격은 고객의 자금을 직접 노리고 있어 그 파급력이 더욱 클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블록체인 분석 전문 기업인 TRM랩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집계된 가상자산 해킹 피해액은 총 280억 달러(약 37조 원)에 달한다. 연도별 피해 규모를 살펴보면 2023년 18억 5,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8억 7,000만 달러로 증가했으며, 올해는 이미 87억 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거래소 기능 집중된 구조가 해커의 표적

해커들이 가상자산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배경에는 고객 자산이 특정 거래소에 고도로 집중된 구조적 결함이 자리 잡고 있다. 주식 시장의 경우 증권사의 주문 접수, 거래소의 매매 체결, 예탁결제원의 자산 보관 기능이 분리되어 운영되지만, 가상자산 시장은 거래소가 이 세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 즉, 거래소 한 곳만 뚫어도 막대한 자금을 손쉽게 탈취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수십억 달러의 고객 자산이 거래소에 묶여 있는 가상자산 시장의 특성이 해커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타깃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킹 수법의 고도화로 인해 안전하다고 믿었던 영역까지 위협받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비트의 경우, 지난해 자금을 온라인으로 전송할 때 거치는 승인용 서명 화면을 조작하는 수법을 통해 14억 6,000만 달러를 유출당했다. 이는 인터넷과 차단되어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콜드월렛'에서도 발생한 사고로, 단순히 개인 키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보안을 담보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규제 공백과 금융권 전이 가능성

국내외를 막론한 규제 공백도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한국의 경우 전자금융거래법이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 지정이나 보안 인력 및 설비 기준을 규정하고 있으나, 정작 가상자산 거래소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해킹 사고 발생 시의 즉각적인 보고 의무나 피해 배상 책임에 대해서도 명확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시장은 이번 사태가 가상자산의 취약성을 드러냄에 따라 금융 시장 전반의 불안으로 확산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바이비트는 해킹 사고 이후 40억 달러가 넘는 대규모 인출 사태인 '뱅크런'을 겪은 바 있다. 바이낸스 역시 보안 점검을 이유로 1일(현지 시각)까지 출금을 제한했는데, 출금 재개 이후 고객들의 인출 수요가 한꺼번에 몰릴지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리스크가 전통 금융권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3년 FTX 파산 여파로 인해 가상자산 친화적 은행이었던 미국 시그니처은행이 뱅크런으로 폐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만약 불안감이 확산되어 스테이블코인을 현금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거세질 경우, 발행사가 준비금으로 보유한 미국 국채를 대량 매도하게 되면서 국채 시장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현재 시장의 즉각적인 혼란은 크지 않은 모습이다. 바이낸스의 비엔비(BNB) 가격은 해킹 소식 직후 7% 급락하며 680달러 선까지 내려앉았으나, 이날 700달러 수준을 회복하며 하락폭을 만회했다. 다만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부 가상자산 대출 플랫폼들이 유동성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번 해킹이 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