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SBS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가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를 다룬 장면을 방영하자, 국회 전자청원 게시판에는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해프닝이나 조회수를 노린 자극적인 논란으로 치부될 법했으나, 이번 사태는 과거 영화 <암살자(들)> 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단순히 5·18을 부정하는 노골적인 방식이 아니라, '논란'이라는 모호한 틀 안에서 세련되게 다듬어진 '연성화된 극우 담론'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논리적 허점을 숨긴 채 동조자들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중립의 탈을 쓴 피해자 서사의 구축

방영 중단을 요청한 청원인은 5·18이 아픈 역사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여야 간 시각차가 존재하는 정치적 사안이기에 드라마 소재로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드라마가 특정 정치 입장을 대변하면 자격을 상실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들의 구조를 뜯어보면 더 정교한 전략이 보인다. 5·18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먼저 깔아둠으로써, 자신들이 혐오 세력이 아닌 '중립적 관찰자'라는 알리바이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실제로는 5·18이 역사적 주류가 된 상황을 '강요'로 규정하며, 자신들을 비주류이자 피해자로 설정하는 '언더독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즉, 5·18이 역사적 진실이 된 상황을 '입장 차이가 해소되지 않은 사건'으로 격하시키며 진보의 편향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정치권에서도 나타난다. 국민의힘 미디어위원회 이진숙 위원장은 5·18이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드라마 속 인물이 특정 정치 세력을 연상시킨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진숙 위원장은 과거 5·18을 소요 사태로 표현하는 포럼에 참여하거나 신군부 인사를 국회에 초청한 전력이 있다. 그는 가해자에 대한 비판을 '정권 기조와 같은 방향의 부당한 공격'으로 치부하며, 역사적 가해자의 위치를 피해자의 위치로 치환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비자 운동과 언론이 가세한 '논란'의 확산

극우 담론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소비자 운동 형태로도 진화했다. 디시인사이드 <닥터X> 갤러리는 성명서를 통해 역사적 존중을 언급하면서도, 의료 드라마에 5·18을 결합한 방식의 설득력을 문제 삼았다. 이는 5·18의 등장을 설명이 필요한 '예외적 상황'으로 규정함으로써 사건의 무게감을 희석한다. 또한 아주경제나 매일경제 같은 언론 매체 역시 '서사적 설득력'이나 '입체적 구성'을 이유로 제작진의 시도를 비판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역사적 가해-피해 구도를 '입체적'이라는 말로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불편한 것'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구조적 부조리를 낳고 있다.

결국 현재의 극우 담론은 과거처럼 직접적인 폄하를 하기보다, '표현의 자유'와 '중립성'을 무기로 삼아 역사적 의미를 훼손한다. 이들은 진보 진영이 '성역'을 만들어 기득권을 누린다는 피해자 서사를 활용해 공격을 이어간다. <닥터X>의 이번 에피소드는 이러한 교묘한 언어의 기술을 마주한 상황이다. 단순히 창작의 자유를 외치는 것을 넘어, 정교하게 설계된 극우의 논리 구조를 해부하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