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타들어 가는 산림, 확산하는 '소나무 에이즈'

단풍이 절정에 달해야 할 10월 말, 전국의 산들이 푸른 빛을 잃고 잿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경북 경주의 야산은 이미 재선충병에 점령당했으며, 경남 창녕군 우포늪 인근 역시 붉은색과 회갈색을 띠는 고사목들이 방치된 채 널려 있다. 이른바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이 전국적으로 급격히 퍼지자, 경상남도는 지난 27일 국가 차원의 방제 전환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산림청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2025년 6월~2026년 5월) 전국에서 발생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 고사목은 총 177만 그루로 집계되었다.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28만 그루가 급증한 수치다. 감염 피해가 확인된 지자체 또한 전국적으로 170여 곳에 달하며, 최근 5년 사이 피해 규모는 이전보다 4.7배나 불어났다.

수도권까지 침투한 치명적 재앙

피해 지역은 경북의 안동, 포항, 경주와 경남의 창녕, 밀양 등지에 집중되어 있으나, 경기 양평에서도 감염 사례가 보고되는 등 확산세가 거세다. 특히 서울의 경우 작년 4그루였던 감염목이 올해 74그루로 폭증하며 수도권 중심부까지 위협하고 있다. 국립공원과 천연보호구역, 국가유산구역을 가리지 않고 침투하는 이 병은 단 한 번의 감염만으로도 수분과 영양 공급로를 차단해 나무를 100% 고사시킨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산림의 근간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사후 방제의 한계와 국가적 대응의 필요성

1988년 국내 첫 발생 이후 30년 가까이 산림청과 각 지자체가 쏟아부은 방제 예산은 수조 원에 이른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 투입에도 불구하고 확산 저지에 실패한 이유는 명확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솔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이 급증한 데다, 험준한 지형적 특성과 감염 초기 단계의 긴 잠복기 때문에 예찰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고사목과 주변 우려목을 제거하는 '사후 추격형' 방식으로는 매개충의 확산 속도를 따라잡기 역부족인 실정이다.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경쟁처럼, 한 번의 실기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재선충병과의 전쟁에서 단기적 예산 투입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AI 예찰과 예방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

정부가 최근 '국가방제벨트' 구축과 '국가 주도형 방제 체계'를 마련했으나, 현재의 위기를 잠재우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제는 소나무재선충병 대응을 단순한 산림 관리가 아닌 '국가재난' 수준으로 격상해야 한다. 향후 3~5년간 집중적인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며, 드론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선제적 예찰 시스템을 고도화해야 한다. 또한 보호가 필요한 구역에는 검증된 예방용 나무주사를 집중 투입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수종 전환 및 신기술 연구개발을 병행하는 과감한 결단이 시급하다.